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지우아빠 Aug 08. 2021

9. 협상을 해보기까지

공동연구, 투자유치, 사업개발의 자질...

예전에 바이오벤처에 근무를 시작하면서 회사의 사업계획서를 통해 기술과 사업을 공부하게 하고 입사 1개월 후에 대표님 포함 임직원 앞에서 발표를 하게 된 적이 있었다. 입사자는 누구나 이런 과정을 겪는다고 했는데 나도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최선을 다해 발표했지만 대표님 눈높이에는 도무지 맞지 않는 듯 이렇게 얘기하셨다. "O부장, 그 정도 밖에 발표하지 못하나? 대학생도 그 수준보다는 더 잘할 걸세." 풀이 죽어서 발표장 밖을 나서는데 옆에 계셨던 임원분이 나를 위로하면서 말했다. "O부장님, 생각보다 잘 했어요. 제가 옛날에 발표할 때는 초등학생 수준 밖에 안된다고 욕먹었으니 대학생 수준이면 얼마나 많이 칭찬한 거겠습니까?"


경영 뿐만이 아니라 공동연구, 투자유치, 사업개발 상대방(파트너)가 있는 업무를 하게 되면 여지없이 중요하게 활용되는 능력이 바로 협상력이었다. 발표 장소에서는 내가 원하는 분위기를 이끌어 가면서 청중들에게 원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거나 그들을 설득해야 하고,  미팅 장소에서는 대화를 하는 짧은 시간에 상대방의 논리가 무엇인지 즉시 파악해야 하고, 그를 바탕으로 대안을 제시하거나 우리 회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미팅과는 별개로 점식식사, 저녁식사, 술자리 등을 통해 파트너와의 친분을 쌓기도 했다. 


<"상대방"과의 협상>


협상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성을 활용하고, 어떤 노력을 갈고 닦아야 할까?


첫번째로 자신의 인간적인 매력을 적극 활용했다. 남다른 유머감각을 자랑하고 있다면 설령 그 자리가 심각한 주제로 치열하게 싸우는 자리라고 하더라도 간간히 유머를 구사하는 것을 추천한다. 가열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다들 여유를 가지게 되면서 훨씬 더 쉬운 협상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매력적인 얼굴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면 상대방을 몰아치지만 말고 젠틀하게 대함으로써 신뢰감을 주는 것이 가능하고 이 또한 유리한 협상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예전 바이오 벤처에 근무할 당시 사업개발을 총괄하던 부사장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는데, 해외 제약사 등의 파트너와 사업개발 협의를 할 때 그 담당자와 어떻게든 친구가 되어 보라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이를 기억해뒀다가 일본 기업과 협상을 할 때 써먹어 본 적이 있다. 한창 협상이 진행되던 와중에 그 담당자가 휴가를 가게 되었고 때마침 한국에서 며칠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시간을 맞춰 부부 동반으로 저녁식사 대접을 제안했고, 아내 분에게 한국 전통 선물을 드리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사적인 대화를 많이 나누었던 것이다.


두번째로 순간적 판단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메일이 오고 가는 협의라면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이것저것 고려해가면서 충분히 시간을 들일 수 있다. 그러나 막상 회의장에 들어서서 당면 현안에 대해서 치열하게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상대방이 제안하거나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할 여유가 없고 그 자리에서 바로 역제안을 하거나 반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그 전부터 현안에 대한 충분한 숙지와 전략을 세우고 있어야 하지만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서는 이러한 순간적 판단력이 큰 역할을 하며, 특히 경영자의 경우 자신이 내뱉은 한마디가 앞으로의 논의 방향에서 되돌릴 수 없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상시 내부 회의나 보고 자리에서 제반 사항을 염두에 둔 채 논리적 수순에 따라 빠른 판단을 내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세번째로 대화의 기본적인 스킬과 원칙을 지키는 습관을 들였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상대방 주장의 본질적인 취지가 아니라 말초적인 문장에 무조건 달려드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너무 텐션이 높아서 흥분된 어조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상대방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마구 끼어들어서 자신의 주장 만을 계속 고집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항상 상대방이 하는 주장이나 논리를 주의깊게 다 들어주고 그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젠틀하게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투자유치 과정에서 기업 IR을 하다보면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와중에 투자심사역이 기술이나 파이프라인 등에 대해 질문하는 경우가 당연히 있게 마련인데 이때 질문의 요지와는 동떨어진 답변을 한다거나 불필요하게 긴 시간 동안 장황하게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길고 많은 답변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절제되고 정제된 답변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네번째로 자신 만의 전략적 화술을 만들어 둘 필요가 있었다. 이 역시 예전 바이오벤처 부사장님으로부터 배웠던 사항인데, 국내든 해외든 담당자를 처음 만나게 되면 어느정도 친분을 쌓기 전까지는 서먹서먹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첫 회의 후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말할 나위가 없고 서로 어색한 분위기에서 눈빛도 마주치기 어려운 거북한 상황이 만들어지기 일쑤다. 그때 부사장님은 항상 자신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자신이 바이오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어떻게 이쪽 사업분야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바이오 뿐만 아니라 교육 산업에도 관심이 있어서 어떻게 진행해보고 있는지 등등 자신의 레퍼토리를 이야기하다보면 거북스러워하던 상대방도 자신이 굳이 먼저 얘기를 해야 하는 부담감도 덜고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주는 등 급속도로 분위기가 좋아지게 마련이었다. 앞서의 블로그 글들을 읽어보면서 독자들도 깨달았겠지만 각 편의 서두에서 꺼내놓은 그런 이야기들이 내가 협상을 하거나 미팅을 할때 많이 쓰는 레퍼토리들이며, 독자들도 자신만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들을 잘 기억해두고 활용하기를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8. 직원에게 동기부여를 하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