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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우아빠 Dec 21. 2022

12. 제약사와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하기까지

상대가 처한 상황의 파악, 치열한 협상, 그리고 계약서...

필자는 바이오벤처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얻은 자그마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중견 제약사로 이직할 기회가 생겼고, 원래는 연구소 소속으로 지원했지만 경영진의 방침으로 본사에서 면접을 다시 보게 되었고 결국 본사에서 일도 시작하게 되었다. 사회 커리어 만이 아니라, 인생 커리어 측면에서도 내게는 큰 전환점이었다. 왜냐하면 본사 면접실에서 대기하던 중에 비서로 보이는 단정한 모습의 여직원이 커피를 가져다 주었는데, 알고보니 같은 팀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아 일할 동료였던 것이다. 얼마 후 입사가 결정되고 업무를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밤에 자려고 할때 창문으로 비치는 달빛은 너무 밝아서 잠이 들지 않았고, 심란한 마음에 밤새 뒤척거리다가 결국 앞서 언급했던 "사귀기 2개년 계획"을 정립하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4. 연구개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까지). 운이 좋았던 것은 팀 내에서도 둘이서만 협업해야 할 일이 많아서 계속 이야기하고 교류할 일이 많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계약서 업무였다. 경우의 수를 다 따져보면서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 저런 경우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야 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조건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우리 회사에 유리하도록 끌어가려면 어떻게 counter offer를 보내면서 조항에 반영해야 할지 등을 조직적, 체계적, 전략적으로 완성해야 하는 것이 계약서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계약 당사자가 미국 과학자였기 때문에 한글이 아닌 영문 계약서에서나 쓰는 용어나 표현을 활용하고 이해해야 했다. 어쨌든 덕분에 영어 학원까지 같이 다니게 되었고, 결국...


<영문계약서 사례>


연구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바이오벤처라고 하더라도 무작정 연구개발만 하고 있을 수는 없고 공동연구, 기술이전 등 사업화에 일찌감치 눈을 뜨고 성과를 쌓도록 병행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업화 실적은 향후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토대가 되기도 하고, 다음 라운드의 투자유치를 할때 높은 기업가치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며, 코스닥 상장을 추진할 때 기술성 평가, 예비심사 등을 통과할 수 있는 실적이 되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다보면 바이오벤처가 글로벌 제약사와 막대한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는 기사가 종종 올라오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문게 사실이고, 기술료 규모에 비례하는 만큼 많은 개발비를 투입해서 임상 후기까지 힘겹게 이끌어가야만 얻어지는 성과인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우리 같은 소규모의 바이오벤처 입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사업화를 할 것인지 고민해야만 했고, 보유하고 있는 자금과 우리 파이프라인에 대한 잠재성 및 개발 성공 가능성을 항상 저울질해야만 했다. 


그런 측면에서 공동연구는 개발비 부담을 줄이고, 향후 기술이전 파트너를 잠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바이오벤처 입장에서 좋은 사업화 모델이었다. 다만 공동연구의 경우에도 계약을 체결하기까지 난이도가 만만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제약사의 마음을 사고 공동연구 계약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가진 플랫폼 기술의 장점을 마음껏 자랑하면 될까? 제약사의 연구소장이나 대표이사와의 친분이 꼭 있어야 하는 걸까? 많은 것을 양보해주기만 하면 계약이 체결될까? 1단계로 상대방 제약사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 혹은 "전문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확신한다. 여러 제약사들을 만나보면서 얘기를 듣다보면 그들이 우리 회사 만이 아니라 이미 다른 국내외 벤처들을 두루 만나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만나봤던 바이오벤처 중에서 매력적인 파트너를 선별할 수 밖에 없고, 그 일환으로 구성원들의 실력과 경력이 어떤지, 그리고 회사와 기술 및 제품을 소개받으면서 platform validation, in vitro assay, metabolic stability, in vivo PD, PK, mechanism, efficacy, differentiation point, clinical trial strategy 등 말 그대로 신약을 정석적으로 연구개발하고, 논리에 맞게 믿을 만한 데이터를 충분히 쌓았는지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산전수전 겪으며 신약을 연구개발해왔던 제약사 입장에서도 감탄할 만큼 단단한 데이터를 보여주고, 질문사항에 전문성 있게 대답해준다면 일단 첫발은 잘 디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단계는 공동연구 계약의 구조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회사, 기술 들이 다 제각각인 것처럼 공동연구 계약의 구조도 천차만별이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 제약사의 Needs를 잘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협상 과정에서 상대 제약사는 가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조건을 요구하기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공동연구 프로그램들의 개발진도를 무리한 일정으로 타이트하게 잡고, 이의 달성을 게런티하라는 식으로 요구받을 수도 있는데, 그 배경을 잘 파악해보면 상대 제약사가 새로운 적응증 영역에 진출하면서 경영진이 빠른 성과물을 원하고 연구소에서도 이를 보여줘야 하는 Needs가 존재하는 식이다. 그럴 경우 우리 회사에서 이미 연구가 진척된 프로그램을 공동연구에 끼워넣어서 개발진도와 성과를 빨리 낼 수 있는 구조를 역제안하는 것도 방법인 셈이다. 협상 과정은 결코 승자와 실패가 정해져 있는 게임이 아니다. 우리 회사에만 이익이 되도록 퇴로가 없는 조건 만을 계속 강요해서는 안되며, 서로 손해를 보지 않고 각자의 Needs를 만족할 수 있도록 협상의 소재를 다양하게 늘여 나가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힘겹게 짜내야 하는 인문학적인 영역이다. 


3단계는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공동연구 계약서나 기술이전 계약서를 보면 3~4페이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십페이지에 달할 만큼 방대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이유는 애매모호하거나 이견의 소지가 없도록 명확하게 용어를 정의하거나, 다양한 경우의 수를 빠짐없이 꼼꼼하게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A의 플랫폼 기술과 B의 제품을 함께 결합하는 공동연구의 경우, 제3자인 C의 플랫폼 기술에도 결합해볼 수 있는 권리를 B에게 줄 것인지, 그렇다면 상호 평등의 원칙에 따라 제3자인 D의 제품에도 결합해볼 수 있는 권리를 A에게 역시 줄 것인지, 서로 상충되지 않도록 확인하는 절차는 어떻게 할 것인지, 특허는 이런 내용을 반영해서 어떻게 출원할 것인지 등등 따져봐야 하는 경우의 수는 너무나도 많다. 만약 본계약 체결 후에 그런 애매한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면 amendment 추가 계약을 통해 보완하는 것도 방법이다.


<공동연구 계약 구조>


앞서 Series B 투자유치의 글에서 언급한 것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영자는 이러한 공동연구의 협상, 구조 결정, 계약 체결에 대한 전 과정을 BD(사업개발) 담당 임원이나 담당자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되고 흘러가는 과정들을 세세하게 이해해야 하며, 계약서의 용어나 내용에도 익숙해져야만 한다. 협상 과정에서 시도 때도 없이 변화하는 조건들을 담당자가 경영자에게 보고할때마다 기초 용어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고, 내부 보고 준비와 상사를 이해시키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것처럼 비효율적이고 기운 빠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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