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혹은 불공평에 대한 반감...
필자가 이전 회사에 다니던 시절, 2000년 초반에는 분위기와 문화가 지금과도 사뭇 달랐다. 토요일은 휴무일이 아니라 격주 단위로 오전 근무만 했고, 그날은 팀 단위로 점심식사로 구내식당에서 라면이나 국수를 먹으며 이 얘기 저얘기를 나누고는 모처럼의 오후시간을 즐기기 위해 퇴근을 서두르곤 했다. 그리고 술자리 회식도 많았다. 팀에서 마시거나, 본부에서 마시거나, 연구소에서 회의를 하고 나서 마시거나... 이전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얼마되지 않았을 때 친구로부터 소개팅 제안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만나고 보니 12살 연하였다. 세대차가 많이 날거라고 지레 걱정을 했지만 은근히 얘기도 통하고 재미도 있어서 다시 만날 생각을 하고 헤어졌다. 문제는 그 이후에 연구 관련 회의가 잡혀서 지방에 있는 연구소로 가는 날에 벌어졌다. 장시간의 회의를 마치고 연구소장님, 실장님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평소 주량의 서너배는 마셔댔고,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만취한 상태에서 소개팅 했던 분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날 저녁 몇시에 어디서 만나서 엄청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호기롭게 약속을 했던 것이었다. 다음날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고 출근한 후 밀린 일들을 처리하며, 약속은 까마득하게 잊은 채 야근을 하고 있으려니 회사로 전화가 왔다. 약속했던 장소에서 한시간째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나오냐는 것이었다. 제가 그런 약속을 했었나요? 하는 말에 이놈은 뭐지? 하는 뉘앙스의 마지막 말과 함께 그녀의 전화는 끊겼고, 유치원을 잡아보려던 원대한 계획은 그렇게 무참하게 깨졌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MZ세대라는 용어를 많이 쓰지도 않았고, 필자는 그런 것들을 의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우리 회사의 구성원인 연구원들을 이해하고, 회사에서 일하는 걸 만족시키고, 불만을 해결해주는 건 힘든 일이면서도 동시에 재미있는 도전이었다. 나이와 세대 차이가 나긴 했지만 그들 옆에서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수다를 떨면서 친해지기도 했거니와, 다행이 초창기에 합류한 연구원들이 열심히 실험하고 거리낌 없이 소통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줘서 고맙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시스템과 제도를 조금씩 도입하고 정착시키려 했는데 그 과정이 매끄럽지만은 않아서 연구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고, 회사의 루틴한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다른 회사의 처우를 비교해 가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이전 글에서 올린 연봉과 상여금에 대한 불만이었으며(8. 직원에게 동기부여를 하기까지), 또 다른 사례는 "경업금지 서약서"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왔다. 사실 직원을 채용하고 입사하는 시점에 이 서약서를 체결했어야 했는데, 민감한 노무상의 이슈라 미루고 있다가 뒤늦게 일괄 체결하려던 과정이 문제였기도 했다. 당연히 연구원들은 경쟁업체에 대한 이직금지를 민감하게 해석했고, 다른 벤처나 제약사들은 이런 경업금지 서약서를 전혀 체결하지 않는 곳도 꽤 있다며 불공평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가 필요한 사안은 아니라서 처음에는 인사를 담당하는 임원에게 그 일을 맡기고 일괄적으로 서약서를 받도록 업무 지시를 했지만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는 않았고 불만은 오히려 커져 갔기에 필자와 인사 임원, 근로자 대표 2명과 함께 긴급히 회의를 소집했고 그 자리에서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협의를 거치게 했다. 그리고 회의 과정에서 이 글의 주제인 세대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필자보다 나이가 많았던) 인사 임원은 이 서약서를 체결하는 것이 회사에 남아있는 구성원들과 회사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고, 회사도 이 서약서를 바탕으로 소송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과 함께 공동체로서 끝까지 가기 위한 일환이라고도 설명했다. 이에 근로자 대표들은 남아있는 구성원들이나 회사에 도움이 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는 없고, 회사와의 공동체 의식은 낡은 관념이라는 뉘앙스로 반박했다. 사실 이 부분은 필자도 근로자 대표에게 동의하는 바였고 내가 생각하는 회사-구성원의 관계에 대해 말을 꺼냈다. 회사-구성원은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이고 따라서 한쪽의 이익을 위해 한쪽을 희생시키는 구조는 원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회사와의 공동체 의식에 기반해서 구성원들이 로열티를 가지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고 회사의 경영진이 최소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줄 거라는 신뢰"에 기반해서 이만큼 지탱해왔다고 생각한다고 말이다. 결국 서약서의 조항에 근로자 대표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어느정도 반영했고, 그래도 완강히 버티면서 서약서를 서명하지 않는 연구원에게는 필자가 직접 찾아가서 개별적으로 상담하면서 일을 마무리지었다.
필자는 MZ세대라고 불리우는 나이대의 구성원들에 대해 100% 이해하지 못하고, 함부로 규정지으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성향을 최대한 파악하는 것이 상호간의 오해에서 비롯되는 불합리한 상황을 예방하는데 필수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같이 일해 오면서, 수다를 떨며 얘기를 나눠 보면서, 그리고 다양한 노무적 이슈를 겪어 보면서 필자가 느꼈던 지극히 주관적인 이미지는, 그들이 불공정 혹은 불공평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불공정 혹은 불공평을 느끼는 대상이 이미 많은 것을 가져갔다고 생각되는 나이든 세대일 수도 있고, 다른 회사에 훨씬 좋은 처우로 입사한 동기일 수도 있고, 본인은 엄두를 못냈지만 영끌을 불사하고 기어코 집을 장만한 알지 못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이러한 성향이(그게 맞다면) 잘못되고 비뚤어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성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주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