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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우아빠 Jun 04. 2024

19.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하기까지 (3)

공부하고, 예측해가며, 과감하고, 꼼꼼히...

사회생활 초년생으로서 바이오벤처 회사원으로 근무할 당시, 모처럼 위탁연구 의뢰를 받게 되었고 성실한 협상 끝에 계약을 따내게 되었다. 특정 의약 단백질을 생산하는 세포주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생산 수율, 즉 그 세포주가 얼마나 많은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는지 품질에 따라 기술료를 점점 높여 받을 수 있는 구조의 계약이었다. 그런데 정작 기술료 기준이 되는 생산 수율 목표를 구간이 아닌 고정된 숫자들로 설정한 것이 패착이었다. 1g/L, 2g/L, 3g/L...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최종 생산 수율은 2.8g/L 이런 식의 중간값이 나오면서 양사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당연히 상대방은 2g/L 기준으로 기술료를 주겠다고 고집했고, 우리는 2g/L와 3g/L의 중간값이므로 중간의 기술료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결국 양보할 수 밖에 없었다. 나름 논리적이고 조직적으로 업무를 처리한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얼마나 계약을 어설프게 체결했는지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2.8g/L 헬토파스칼 킥! vs 2g/L 반격!>


파트너 제약사로부터 Term Sheet을 받는 시점에서는, 장기간의 노고 끝에 드디어 성과가 기대되는 분위기에 휩쓸리면서 계약금, 마일스톤, 로열티 등 숫자에만 먼저 눈길이 가기 쉽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제반 조항들은 통크게 양보하려는 겸허한 마음도 함께 들었지만 막상 Term Sheet을 받아보면 그 숫자 자체가 기대했던 수준에 턱없이 못미치는 것을 보고 실망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조울증 환자처럼 감정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셈이다.


<Term Sheet의 일반적인 구성>


먼저 제반 조항들은 독소 조항이 없는지, 나중에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회사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없는지 꼼꼼히 챙겨보면서 파트너 제약사에게 아래 원칙들에 따라 협상을 진행했다. 


1. 근거나 이유를 메모로 기입하면서 충실히 역제안을 보냈다. 상대방이 아무 근거 없이 불합리한 조항을 보내왔더라도, 우리회사 역시 아무 근거 없이 역제안을 보내면 결국 기 싸움을 하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협상 당사자로 오해받기 쉽상이다.

2. 우리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역제안을 보내서도 안되며, 당연히 상호 호혜의 원칙 하에 어느 정도 받아들일 만한 합리적이고 중간적인 제안을 최대한 고민해야만 했다.

3. 첨예하게 대립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별개의 조항들을 함께 묶어 쟁점을 다변화하고 A 부분은 양보하되 B 부분은 우리가 취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거나 아예 다른 방식의 접근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많이 발생하는 상황의 예를 들면, 원발명에 대해서는 기술료를 A 규모로 지급하겠지만 개량발명에 대해서는 B 규모로만 줄여서 지급하겠다고 제안이 왔을때, B 규모 자체에만 몰두해서 그 숫자를 얼마나 더 끌어올릴지에 대해 에너지와 시간을 써가면서 협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개량발명의 기술료를 지금 결정하지 말고 나중에 개발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협의하고 서면합의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미뤄버리는 식이다. 조항에 합의가 들어가는 이상, 그 단계가 오면 우리회사의 협상력이 강해질 것으로 예상될 때 좋은 전략이며, 계약 체결 자체를 불필요하게 지연시키는 것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받은 조항의 범위와 틀 안에서만 검토하지 말고, 빠진 조항이나 상황이 있지나 않은지 꼼꼼하게 검토해야 했다. 예를 들어 Termination에 따른 효과, 조치 등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끝내서는 안되며, 어떤 상황이 닥칠지 예측해가면서 보충할 필요성이 있다.

5. 대면협상이나 T/C 자리에서는 최대한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을 피하고, 간간이 유머를 구사해서 양쪽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상대방도 긴장하기는 매한가지이며, 업무상 첨예한 협상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서로 불편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절한 유머를 구사하면 민감한 이야기가 오고 가더라도 충분히 서로의 감정을 덜 자극시키면서 풀려나가게 된다.

6. 협상 창구를 실무책임자로 지정하고, 경영진이나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되도록이면 전면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우리측 실무책임자가 제안했던 내용을 최종 의사결정권자를 핑계로 나중에 뒤바뀔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놓았다. 물론 첨예하거나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나서서 무게감을 더해주는 경우가 필요하기도 하다.

7. 내부 이해관계자의 설득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었다. 예를 들어 연구개발과 관련된 조항의 경우 그 역할이나 책임을 맡은 당사자는 연구소, 개발실 등이기 때문에 사업개발 부서에서만 협상을 하다보면 그 조항의 의미가 어떤지, 나중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Term Sheet 전체 혹은 관련 조항을 충분히 공유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며, 필요하다면 회사 차원의 전략적 결정을 위해 그들을 설득할 필요성도 있다.


<각자 회사를 대변하는 협상 실무책임자>


다음으로 기술료 숫자이다. 아마 사업개발이나 협상 실무를 해본 사람이라면 anchoring effect에 대해 잘 알 것이다. 어느 당사자가 선제적으로 제안을 하면 상대방은 일단 그 제안에 얽매이게 되며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태에서 협상을 진행하게 되는 식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여지 없이 이런 상황이 닥쳐왔다. 사실 처음 Term Sheet을 받고 기술료 숫자를 본 순간 두눈을 의심하기도 했다. 기대에 턱 없이 못미치는 규모였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실무책임자는 회사 내부 회의에서 침울한 목소리로 내용을 공유했고, 역제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처음 받은 숫자를 조금 올리는 수준으로 보고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향후 회사 cash flow 추정에서도 이 숫자들을 적용해서 기정사실화 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한 나의 지시는 단호했다. 거기에 얽매이지 말라고, 철저히 무시하고 우리가 합리적으로 생각하거나 원하는 숫자를 다시 도출하라고 했다. 


Anchoring effect에 얽매이는 이유는 상대방도 충분히 합리적이고 이유가 있는 상태에서 제안을 했을 거라는 선입관 50%와 함께, 우리가 터무니없는 역제안을 해서 기술이전 딜 자체가 깨져버리는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50% 정도라고 생각된다. 물론 철저히 무시하라고 해서 우리가 터무니없이 역제안을 해서는 안되며, 나름 합리적인 근거와 현실성을 위해 아래 방법들에 따라 준비했다.


1. 기존 기술이전 딜 사례를 최대한 수집해서 숫자들을 참고하려고 했다. 상대방이 이미 비슷한 적응증, 비슷한 물질에 대한 딜 사례가 있다면 최상이고, 최저~최고 기술료 범위라도 파악하려고 했다. 

2. 상대방이 이 파이프라인을 가져가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수집하려고 했다. 물론 어려운 작업이긴 하지만, 상대방에 대해 정보를 알고 있는 지인 등을 물색해봐야 했다.

3. 매몰 비용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역제안 숫자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파이프라인을 현재 단계까지 연구개발하는데 소요된 비용만 하더라도 A 만큼인데 거기에 못미치거나 비슷한 수준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식이다.

4. DCF, NPV 등의 기술가치 산정 방식은 솔직히 잘 쓰이지 않고,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근거로 쓰기에도 약한게 사실이다. 할인율이나 개발단계별 성공확률 등 대입하는 모든 숫자에 추정이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하고, 설령 그렇게 제시하더라도 들이는 공에 비해 상대방이 이런 방식에 응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결국 협상의 문제로 귀결된다.

<Anchoring Effect 대처 방법 - 무시! >


우여곡절 끝에 Term Sheet에 대해 합의를 하게 되면 계약서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본격적으로 골치가 아파지는 단계이기도 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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