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추석, 후쿠오카 여행

기타규슈 히비키나다 그린파크

by 김자주

이번 일본 후쿠오카 여행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기타규슈에 있는 히비키나다그린파크의 대형 놀이터.


정말 큰 녹지 위에 덩그러니 대형 미끄럼틀과 썰매가 있다. 새나와 그 미끄럼틀과 썰매를 거기에서만 한 50번은 탄 것 같다.

새나가 태어난 후로 그렇게 배꼽빠지게 웃는 그 모습을 나는 처음봤다. 깔깔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새나의 웃음은 정말 즐거워보였다.

아 내 딸이 실은 이런걸 좋아하는구나. 딸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했다. 미끄럼틀도 별 것 아니고 썰매도 별것 아니었으나, 새나는 탈 때의 그 스피드와 짜릿함이 너무 좋았나보다.


푸르른 하늘. 선선한 10월 후쿠오카의 공기. 그리고 사랑하는 딸의 사랑스런 깔깔댐이 내 기억에 깊이 새겨졌다.


그날 밤은 여행 마지막 날 밤이었다. 호텔 로비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사케를 한잔 하는데, 그날의 모든 기억, 감정, 미소, 바람, 공기, 기운이 막 살아났다. 그리고 이 모든 기억들이 차츰 희미해지거나, 아니 그보다 시간이 흘러가며 기억의 주인공들이 변해가거나, 아니 어쩌면 변해가는 시간 혹은 세월 속에 묻혀질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나에게 공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공포를 거절하고 싶은 마음에 호텔 밖 잔디밭에서 사진을 보며 내 딸과의 추억들을 곱씹었다.


그러면서 펑펑 울었다. 그 와중에도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주변을 살펴가며, 누가 날 보지 않나 사주경계하던 내 모습이 참 가소롭다.

어쨌든 다음날 그 모든 술기운에 했던 행동들을 곱씹으며 이불킥 날렸을텐데,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시간을 보냈다. 뭐가 그리 서러웠던지.

한참을 울며 방으로 들어온 내게 아내가 묻는다. “울었어?”

아 망했다. 들켰네. 쪽팔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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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술만 마시면 사진 속 새나와 함께한 모든 시간들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실은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들이면서도 신이 내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었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우울한 순간들이기도 했다.

나는 준비된 것 하나 없는 가장이었다. 옳다 여기던 것을 하기 위해 종교에 청춘을 바쳤다. 그 모든 헌신을 후회하지 않지만, 정작 내 현실 속 삶을 챙겨주는 그 누구도 없었다.

종교단체를 떠나 계약직, 학원 등 일을 할 때 태어난 천사 내 딸. 내 딸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축복이고 위로이고 신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래서 그 모든 순간들이 담긴 정지된 사진들은 내 눈에서 생동감있게 살아난다. 사진마다 스토리가 담겨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스토리들이 살아난다. 퇴근길 나를 반기는 새나의 사진. 그것은 실은 직장에서의 고독함과 모멸감이 살짝 묻어있는 표정으로 집에 돌아온 나를 위로해주는 새나의 사진이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이 세상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 같은 마음을 보듬는 하나님의 위로이다.


또 감성에 젖어 이러고 있다. 그만하자.

모든 순간이 정말 아름답다.

내가 포기하고 주저앉을 수 없는 이유가 차고 넘친다.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