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취준대신 세계일주
지난달에 있던 동문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저녁 식사 전에 미리 모여 1, 2학년 후배들에게 선배들이 한 명 한 명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00학번 000이었는데, 이제 다들 학번 앞에 소속과 직업을 붙인다. 선배들 중 가장 막내인 우리 학번이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좋은 회사에 갓 입사한 동기들이 차례로 소개를 했고 내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해병대 장교로 군생활을 하고 있고.. 내년 2월에 전역 예정입니다.. 야간 대학원도 병행하고 있고.. 2년 전이지만 인턴도 했었으니.. 관련 경험에 관심 있는 후배분들은 질문 주세요”.
작아지지 않아도 되는데, 작아졌다. 다음 식순은 업종이 같은 선배들끼리 모여 앉고 관심 있는 후배들이 찾아와 질문을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대학시절 가깝게 지내던 금융권 동기 옆에 앉았다. 30분 동안 질문이 쏟아졌다.
내 동기에게만. 그걸 보고 안타까웠는지 가까운 후배가 입을 열었다. “여기 선배님이 나 새내기 때 학생회장이셨어”. 그랬었지. 학생회장은 대학시절 내 가장 큰 자부심이었다. 그건 옛날 일이고, 지금 들으니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른 동문들은 학번과 이름 앞에 번듯한 직업이 붙는데, 난 언제까지 학생회장을 붙이고 있어야 하는지. “야야!! 제발 조용히 해!! 무시하고 계속 질문하세요 여러분!” 무언가 계속 열심히 쫒았었는데. 지금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잘 모르겠다. 후배들은 직업을 가지려 열심히 질문하고, 동기선배들은 이미 번듯한 사회인이 되었는데 나는 뭘 하고 있지? 박작거리는 강의실에서 나만 외계인이 된 기분이었다.
이 기분은 술자리까지 이어졌다. 괜히 경제지 선배들과 금융권 동기 테이블에 끼어서 1시간 동안 묵언수행을 하게 되었다. 금리가.. 정부 정책이.. 어쩌고저쩌고 전문적으로 들리는 대화에 군인이 낄 자리는 없었다. 2차가 끝나고 인당 15만 원이 나왔다. 재학생 후배들은 돈을 안내는 전통 탓이다. 작년에는 혼자 1차를 계산한 모 변호사 선배가 계셔서 부담이 덜했었다고 한다. “아 이번 달 빠듯한데”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얼마쯤 벌어야 1차를 시원하게 결제해 줄 수 있을까?
선배들이 쥐어주는 택시비를 정중히 사양하고 아직 졸업 전인 동기 자취방 바닥에 대충 누웠다. “괜히 자존심 부렸나, 그냥 받지 병신”. 친구의 코골이를 배경음악으로 4평 자리 방에서 다시 고민에 빠졌다. 나 뭐 먹고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