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26살에 세계여행을 떠나도 인생이 안망하는 이유

스물여섯 취준 대신 세계일주.

by 여행가 민식


신년을 기념해 친하게 지내던 동기 열댓 명이 모였다. 정원이 40명 남짓한 소수과에서 흔치 않은 광경이다. 다른 학번들이 부러워할 만큼 끈끈한 20학번 동기들이다. 올해는 유독 좋은 소식이 많았다. 동기 2명이 전문직에 붙었고, 몇 년 만에 이뤄진 공중파 공채에 합격해 기자가 된 동기도 있다. 물론 그 자리에는 이미 명문 로스쿨, 10대 대기업, 증권사에 다니는 동기들도 앉아있다. 군 입대로 2년 정도 뒤쳐진 남자 동기들도 올해 전부 인턴에 합격했다. 그래서인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나는 모든 진심을 끌어모아 축하를 건넨다. 축하할 만한 일이니까. 그들이 이뤄낸 성취는 길에서 우연히 주운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성취는 선택이 맞을지에 대한 혼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지루한 일상을 전부 이겨낸 결과이다. 심지어 단군이래 가장 경쟁이 치열하고 어렵다는 이 시기에. 내게 아직 축하를 건넬 만큼의 심적 여유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한편으로 마음 어딘가 자리 잡은 씁쓸함을 들키지 않을까 염려하며 열심히 억누른다. 어찌어찌 시간은 흐르고 막차시간이 다가왔다. 붙잡는 동기들에게 미안한 웃음을 건네고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시간 동안 꾹꾹 눌러왔던 한숨을 한 번에 뱉는다. 추운 날씨에 입김이 모락모락 핀다. 지금 11시 30분인데, 다들 나만 두고 택시비쯤은 괜찮은 나이가 되어버렸나 보다.


사실 나도 열심히 살았다. 아웃사이더였을 뿐. 꿈을 묻는 새내기 시절 단골 질문에 나는 항상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난 26살에 세계일주를 할 거야!”. 해병대 장교로 생활하면서도 처음부터 당당히 전역을 외쳤다. 그런 내게 쏟아지는 “넌 나가서 뭐 하게?”라는 질문에도 내 대답은 같았다. “예. 저는 세계일주를 목표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질문에 “변호사”나 “대기업 직장인”으로 답했던 동기들이 그 꿈을 이루었듯 나도 내 꿈을 이루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꿈을 다르게 꿨을 뿐이지. 하지만 그들과 내 대답에는 항상 다른 반응이 주어졌다. 동기들이 대답을 마치면 “아 그렇구나”로 대화가 끝났다. 하지만 내 답변에는 질문이 추가되었다. “아니 그건 꿈이 아니고, 다녀와서 어떤 직업을 가질 거냐고”. 아 맞다 진짜 뭐 하지. 나에게는 세계일주도 벅찬 꿈이라 그 뒤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세계일주도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감히 다음을 상상하냐. 어른들에게는 대충 정답으로 둘러댔다. 입을 다물게 하기 최고거든. “기자 하려고 합니다”, “리트 준비를 할 계획입니다”, “장교특채로 대기업 취업이 목표입니다”. 물론 실상은 전혀 아니다. 이 여행에서 내 세상이 어떻게 깨지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 직업을 정한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어차피 변할 텐데! 변할 만큼 의미가 클 거라고 기대하고 있는데!


AI가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특이점이 와서 천지개벽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사람들이 편을 갈라 싸우고 있고, 세계 각지에서는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불확실성 시대에 놓인 사람들. 특히 우리 청년들은 더 불안하다. 변호사도, 몇 년 전까지 그렇게 칭송받던 프로그래머도 ai가 단숨에 대체한다고 하는데, 나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고민이 크다. 직업을 가지면? 그 뒤에는 잘 살 수 있을까? 직업이나 직업이 없어지지는 않을까? 전쟁이 나거나 경제 위기가 닥치지는 않을까? 이 와중에 서울 부동산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이제는 얼마가 오르던 감흥도 없다. 어차피 못 살만큼 비싼 건 똑같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는 아저씨들이 나와서 편을 가르고 청년들을 비꼰다. 2030 남자들이, 2030 여자들이, MZ들은 어쩌니 저쩌니 동물이나 곤충의 습속을 관찰하듯 제멋대로 묶어버리고 정의를 내린다. 우리 세대가 결혼을 안 하는 걸 넘어 연애도 안 하고 있고, ‘쉬었음 청년’이 어쩌고저쩌고…


취업 시장에서도 기현상이 벌어진다. 경력이 없으면 인턴 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받아주는 법인이 없다고 한다. 학창 시절 내내 끝없는 시험을 거쳐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바로 취업준비에 돌입하고, 겨우겨우 따낸 인턴, 계약직을 몇 년 거쳐서야 정규직 문을 두드린다. 아니면 가장 생산성 높은 몇 년을 독서실 의자에 앉아서 암기와 싸우며 보낸다. 이 과정 끝에 성취하는 사람들 이면에는 수많은 좌절이 깔려있다. 사회가 정해놓은 탄탄대로에서 떨어졌다는 불안함.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함.


그래서 나는 좋은 대학-좋은 직장-좋은 결혼-서울자가로 이어지는 경로를 벗어난다. 세상에 한 톨도 안 되는 내 미미한 움직임이 내 삶을 변화시키는 걸 넘어 누군가에게 티끌만큼 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바라며 내 도전을 기록한다. 대한민국 5천만 인구에게는 한 가지 문만 있는 게 아니라고, 5천만 개의 문을 열자고!

이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닌 26살 청년이 뭐라도 되고 싶어 군대에서 모은 돈과 취준 1년을 날리는 이야기이다.
사랑과 낭만이 가득하길 바라며


2026.02.08.

작가의 이전글00. 동문회에서 느낀 열등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