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10살 때 부터 꿈꾸던 세계일주

스물여섯 취준 대신 세계일주

by 여행가 민식


근데 이상하지 않나? 10살부터 세계여행을 꿈꿨다는 서사가. 아는 나라라곤 미국 중국 일본정도밖에 없었을 10살이 세계여행을?


세계여행은 내가 스스로 가지게 된 꿈이 아니다. 아버지가 심어준 꿈이었다. “아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전 세계를 여행한다” 어릴 적 아버지가 내게 수없이 말했던 그의 꿈이었다.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고 존경했던 나는 그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었고 다시 나의 꿈이 되었다.


아버지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청년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비를 못내 교실에서 체벌과 모욕을 당했던 아버지는 당연히 대학에 다닐 형편이 안 됐다. 돈을 벌면서 학교에 다닐 방법을 궁리하던 와중에 대한민국에 “패밀리 레스토랑”이 처음 들어왔다. 수업 듣는 시간을 빼고 전부 일하면 등록금을 낼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 주방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같은 매장에서 만난 누나와 사랑에 빠져 첫 연애를 시작하는데, 그분이 무려 우리 엄마다. 지금은 투닥투닥거려서 둘이 어떻게 결혼했나? 싶을 때도 많은데, 그때는 많이 사랑했나 보다. 26살, 지금 불 꺼진 방에서 눈이 벌개 저라 무얼 쓰고 있는 내 나이. 그 나이에 우리 아버지는 가정을 꾸렸다.


2년 후 내가 세상에 나왔다. 그때부터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그의 평생직장이 되었다. 30년 동안 몇 번의 이직을 거쳤다. 그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쉬지 않으셨다. 덕분인지 22살 주방 보조에서 시작한 아버지는 50대인 지금 수백억 매출을 내는 외식업 법인의 대표가 되셨다. 꾸준히 공부를 놓지 않으셨던 탓에 서울 소재 대학원 강의도 하고 계신다. (물론 지분 한 푼 없는 월급쟁이라 우리 네 식구는 아직 경기북부에 있는 40년 된 25평 아파트에 산다. 하하)


나는 정말 어릴 적부터 우리 아버지가 너무 안쓰러웠다. 아버지는 몸을 쉼 없이 움직이는 일을 하루 종일 했었다. 그런 아버지가 밤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올 때면 아빠가 병에 걸려 떠나버릴까 두려웠었다. 방문 너머로 들리는 아슬아슬한 숨소리가 아직 생생하다. (이 시절은 아버지 퇴근이 빨라진 지금도 저녁을 늦게 먹는 습관으로 우리 가족에게 남아있다).


아버지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어른, 자상하고 따뜻한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버지가 꿈을 포기하고 가족을 힘들게 지탱하고 있다는 걸 어릴 적부터 느끼고 있었다.


물론 내가 어른은커녕 할아버지가 되어도 아버지를 영화감독으로 만들어 줄 순 없다. 아버지가 바친 젊은 날 또한 돌려드릴 수 없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입버릇처럼 뱉던 그의 꿈. 그 꿈은 내가 이루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꿈은 “아들과 오토바이 타고 세계일주”였다. 그래서 그의 꿈은 나의 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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