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그대로 따라하는, 만 23살 대학생 1억 모으기

스물여섯 취준 대신 세계일주

by 여행가 민식

전 편을 참고하시오! (댓글로 질문 주심 답변 성실히 드리겠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들었던 ‘나의 꿈 ucc”에도, 중학교 진로시간 학습지에도 나는 “아버지와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일주”를 적었다.

그때는 반 친구들도 대통령이니 국가대표니 하는 꿈들을 적던 시기라 오히려 내 꿈은 현실적이게 느껴졌다. 생활기록부 진로란에 대충 회사원을 갈겨 적는 친구들로 교실이 가득해질 나이쯤었나.

나는 처음으로 현실을 진지하게 마주했다.


현실 3형제 : 돈, 은퇴, 관계, 건강

'돈' 세계여행을 하려면 대충 3천만원 이상은 필요해 보였다. 아버지와 함께 오토바이까지 끌고 간다면 1억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돈 한푼 못버는 나이에 1억은 까마득했다. 아버지는 아직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다던데, 내가 취직도 하기 전에 그 큰 돈을 어떻게 모으지?


‘은퇴’ 어찌저찌 돈을 모은다고 해보자. 그러면 우린 여행을 떠날 수 있나?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은퇴해야한다. 아버지가 맘 놓고 은퇴하려면 내가 인생을 빠르게 살아야 한다. 대학 입학도, 졸업도, 취업도 쉼없이 해내야만 한다. 그래야 아버지 은퇴 시기가 당겨진다.


‘건강’ 성인이 되고서야 들어온 문제다. 아버지는 영원히 건강할 줄 알았는데 수능이 끝나고서야 여기저기 몸이 고장나고 얼굴이 쳐진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출발이 늦어질 수록 아버지는 늙는다. 아버지가 한 발자국 더 걷고, 한 잔 더 마시고, 한 시간 더 깨어있을 수 있을때 가야한다.


‘관계’ 기적적으로 나와 아버지가 1억을 모으고, 은퇴해도 될 정도로 준비를 마치고, 아버지가 건강하더라도 우린 한 가지 벽을 더 넘어야 한다. “과연 즐거울까?” 아버지와 말 한마디 안하는 가정도 많다. 특히 부자 관계는 더욱 빡박하다. 아버지도 결국 50대다. 그리고 나는 늙은 사람식 분류로 MZ세대. 그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즐거울 수 있을까? 일주일 여행도 아니고 몇달은 될 텐데.


그래서 돈 부터 모으기로 했다!


돈 : 졸업 전 1억 모으기 대작전


20살이 된 나는 4가지 조건을 충족 시키려 최선을 다했다. 첫 번째 미션은 돈이었다. 26살 전까지 (취직 전 까지) 1억 모으기. 난 대학생이었다. 정치외교학과 데이터사이언스트랙을 복수전공했다. 정말 말도 안되는 목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25살에 1.3억을 모았다. (물론 26살에 비트코인을 만나 9천만원이 되었다)

수능이 끝난 다음 날 부터 전단지를 돌렸다. 길거리에서 풍선을 이고 매일 3시간 씩 전단지를 돌리는 아르바이트였다. 처음 해보는 일이여서인지 너무 즐거웠다. 돈을 더 주는건 아니었지만 전단지를 많이 돌릴 수록 성취감도 생겼다. 그래서 정말 미친놈처럼 열심히 돌렸다. 그러다 보니 미친놈을 알아본 옆 건물 옷가게에서 이직 제안을 받았다. 우리 헬스장 사장님이 금방 나와서 둘이 투닥투닥 하더니 두 가게 전단지를 각각 3시간 2시간 씩 돌리는 걸로 합의를 봤다. 그렇게 매일 5시간 씩 돌리다 또 다른 사장님께 스카웃을 받았다. 그렇게 주말에도 5시간 씩 전단지를 돌리게 되었다. 2달이 지나자 개업 이벤트 기간이 끝나 일거리가 없어졌다.

그렇게 다시 백수가 되었고 열심히 노느냐 돈을 써버린 탓에 50만원이 남았다. 난 26살까지 1억을 모아야 하는데 택도 없었다. 이제 나는 대학에 가야했다. 다행히 등록금은 아버지가 내주신다고 했지만 대학교에 다니면 일을 지금처럼 못할텐데, 앞길이 막막했다. 다음으로 찾은 일은 쿠팡 물류센터였다. 야간조에 지원하면 15만원에 밥까지 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 나가고 싶은 날만 신청하는 구조라 친구들과 놀고 싶은 날에는 놀 수 도 있었다. 물류센터 일도 즐거웠다. 물류센터에는 여러개 직무가 있고 직무마다 하는 일이 다르다. 성공한 스타트업 최전선에서 그 시스템을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신기했다. 물론 20살이니까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내 체력이라면 2시 쯤에 쓰러졌을테다.


그맘때 부터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쳤다. 아버지는 회사가 어려워 월급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대학에서 가장 재밌다는 1학년, 지난 3년 고통스러웠던 대입시기를 견디게 해준 기대였다. 새벽에 너무 힘들때면 독서실에서 경희대학교 축제 잔나비 직캠을 틀어넣고 1시간을 들었다. “나는 내년에 저곳에 있을거야 내일도 잘 견디자”. 그때는 이 다짐이 대학교 3학년 2학기가 되서야 이뤄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길어지는 팬대믹과 함께 기운 가세는 나를 절망에 빠트렸다. 가장 기대했던 2020년이었기에 무너짐에서 오는 충격도 컸다. 한주에 두번 올라오는 ppt, 그 아래 주루룩 달리는 건조한 ‘출석완료’ 댓글이 나의 캠퍼스 생활이었다. 시간도 남겠다 그냥 일만헀다. 당시 우리 가족에게 닥친 재앙은 코로나가 아니라 돈이었다. 일을 하는 이유도 변했다. ‘세계일주를 위한 1억 모으기’는 ‘아버지가 짤려도 휴학하지 않을 만한 비상 자금 모으기’가 되었다.이렇게 세상이 영원히 잠겨버리면 어떡하지? 너무 길어져서 아버지가 직장을 잃으면? 온갖 걱정 속에 처음으로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아버지는 30년 간 이런 압박 속에 사셨구나.

코로나 여파로 쿠팡 아르바이트 지원자가 폭증했다. 매일 아르바이트를 잡기 어려워졌다. 한편으로 사람들이 집에만 갇혀있게 되어 인테리어가 유행했다. 친구 아버지가 하시는 인테리어 사무실에 일손이 부족해졌고, ‘현장 잡부’ 속된 말로 ‘노가다’를 시작했다. ‘노가더’의 삶 역시 낭만있었다. 나는 철거일을 했었는데 하루종일 집을 부쉈다. 부순 잔해를 전부 자루에 담아 트럭으로 내리고, 현장으로 올라갈 땐 트럭에서 시멘트와 목재를 들고 날랐다. 친구와 함께 하루종일 대화하며 일 할 수 있다는게 좋았다. 물류센터에 다녀와 침대에 누우면 공장 소음이 한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누구와 대화할 수 없는 일이기에 정신이 말짱한 낮 시간대에 근무하면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하지만 노가더는 아침일찍 일어나 몸을 쓰며 햇빛을 맞고 친구와 대화한다. 일을 하다가도 아저씨들이랑 커담(맥심커피에 담배)를 때리며 담소를 나누고, 일이 끝나면 막걸리를 마신다. 묵묵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아저씨들이 정겹고 멋졌다. 그렇게 내 대학생활 첫학기가 끝났다.


20살이었으니까. 틈틈히 밤새 술도 마시고 재미있게 놀았다. 방학이 시작되었는데, 통장엔 3백만원 남짓한 돈이 있었다. 1억까지 9천 700만원. 남은 시간은 5년 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지금처럼 하면 불가능 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내 세상을 깨야했다.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 지독하게 사랑하지만 지독하게 벗어나고 싶은 그 공간을 부숴야 했다. 그날 바로 경희대학교 행복기숙사에 신청했다. 캐리어 짐을 대충 때려넣고 집을 나갔다.


‘상경’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3년 반의 시작이었다. 얼어붙은 캠퍼스에 아래에도 새싹은 움트고 있었다. 모든게 통제 되고 중단된 상황 속에서도 공동체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대면 동아리 활동, 비대면 술자리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캠퍼스는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노력들 덕분에 많은 인연을 만났고, 내가 받은 마음을 이으려 노력하며 코로나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들과 교류하며 2020년을 보냈고 그 끝자락에서 1억을 모을 실마리를 찾았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가성비 있게 돈을 벌어서 효율적으로 아끼고 전부 투자한다”




가성비 있게 돈 벌기 : 장학금, 공모전, 인턴, ROTC / 내가 어차피 해야만 할 활동, 하면 좋은 활동에서 돈을 버는게 가장 효율적이다.


[장학금] 국가장학금, 성적장학금 외에도 수많은 장학금이 깔려있는 세상이다. 대부분 막연히 스스로 장학금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장학금 소득분위가 높아서, 성적 장학금을 받기에는 부족해서. 덕분에 생각보다 쉽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나는 학과 학생회장을 했다. 학생회장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터 한해도 빠짐없이 이어온 내 취미생활이다. 이런 취미생활을 하면 한기에 300만원 씩 장학금이 나온다. 1년에 600만원. 학내 스타트업 지원 기관 서포터즈는 한 학기에 200만원을 줬다. 교내활동은 대외활동 대비 난이도와 소요해야하는 시간이 적은데 돈은 많이 주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런 정보를 잘 활용하면 빠르게 큰 돈을 받을 수 있다. 각종 외부 장학금 : 각종 장학재단에서 엄청나게 많은 장학금을 대학생들에게 지급한다. 항상 예의주시 하고 있으면 요건에 맞는 장학금이 한 개는 걸린다. 고학년 때에는 교수님 연구 조교를 했다. 한달에 40만원을 받으면서 어차피 해야할 전공 공부도 더 심도깊게 할 수 있으니 1석 2조이다.


[공모전] 정책 공모전에 여러차례 도전하여 상금을 받았다. 가장 큰 상금으로 혼자 250만원을 받은 경험도 있다. 가장 품을 적게 들여서 할 수 있는 분야 공모전에 꾸준히 도전해보자. 어차피 취업할때 도움이 되는데 돈까지 준다면 1석 2조이다.





[인턴] 학내 현장실습 제도를 이용하면 1학기를 인정받으면서 돈도 벌고 취업에 유효한 스팩을 쌓을 수 있다. 150만원씩 6개월이면 벌써 900만원이다. 나는 학군단에서 허가를 내어주지 않아 현장실습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학점을 4-1학기에 수료 후 유연근무가 가능한 인턴자리를 찾아 학군단 수업과 병행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ROTC] 남학생일 경우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ROTC를 지원할때 수많은 사람들이 만류했다. 동 나이대 친구들에게는 수년 동안 놀림받았다. 물론 쉽지 않은 선택이다. 단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단점은 통제하며 장점을 최대한 취할 수 있다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2026년 기준으로 내 작년 총 소득액은 3600만원 정도이다. (나는 초과근무를 거의 하지 않았다). 섬이나 전방 소초 등 험지에서 근무하면 월급이 최대 200만원까지 더해진다. (물론 그거보다 더 줘도 안할 사람 많을 만큼 힘들다). 임관 전에도 꽤 큰 금액을 지원받는다. 단기복무 장려금 1200만원이 지급되며, 월에 40만원 씩 품위유지비가 나온다. 대학에 따라 기숙사비 전액 면제, 등록금 일부 또는 전부 면제 등 추가적인 헤택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달에 최소 150만원을 저축했다. 성과급과 퇴직금도 전부 저축하면 대략 5000만원을 모을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단기복무 장려금 600만원과 학군단으로 받은 장학금 200만원 방학 중 훈련 3달 간 받은 훈련비용을 포함해 6000만원을 저축할 수 있었다. 내 1억 모으기 계획에 가장 핵심 축은 결국 장교생활이었다. 물론 돈은 이 선택을 하는 부수적인 이유여야 한다. 돈을 목적으로 들어왔다면 나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효율적으로 아끼기 : 돈을 정말 아꼈다. 하지만 대학생활도 내 즐거움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아낄 수 있는 영역과 없는 영역을 나눴다.


아낄 수 있는 영역 : 모든 소비 행위 (커피, 밥, 옷) 아낄 수 없는 영역 : 배움 (여행, 책, 연애)


좀 추례하지만 아낄 수 있는 영역에서 소비를 줄인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식비] 가장 돈을 많이 아낀 영역이다. 부작용으로 파스타, 간장, 계란, 바나나를 보면 구역질이 나는 사람이 되었지만 내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요리에 관심을 조금만 기울이면 식비를 정말 아낄 수 있다. 유튜브에 밀프랩이나 간단 자취요리를 검색하면 정말 많은 정보가 나온다. 외식 한번 할 돈으로 3일을 보낼 수 있다. 물론 바쁜 날에는 간장계란밥, 파스타를 애용했다. 배달음식을 시키고 싶은 날에는 배민B마트에서 시키고 싶었던 음식 값 만큼 식자재를 시켰었다. 커피도 모이면 꽤 큰돈이다. 혼자서는 절대 음료를 사먹지 않았다.


[중고] 중고를 애용했다. 사실 중고나 새거나 크게 다를게 없다. 새 물건을 구매해도 한 번만 쓰면 중고가 된다. 중고 물건은 잘 구하면 10분에 1가격인 보물도 찾을 수 있다. 휴대폰, 노트북, 옷, 신발 전부 중고를 애용했다. 어떤 물건이 사고싶으면 중고 사이트를 최소 1주 스캔하고 그래도 필요하면 새걸 구입했다. 중고 생활에 적응하면 내가 쓰던 물건도 중고에 되팔 수 있다. 정말 싸게 산 물건을 잘 쓰다가 적정가에 팔면 한푼도 안내고 물건을 사용할 수 도 있다. 일례로 나는 군 생활 동안 당근마켓에서 180만원 주고 구입한 11년식 sm5를 타고다녔다. 1년 반 동안 잘 타다가 150만원에 되팔았다. 30만원에 1년 반 동안 차를 렌트한 셈이다. 대학시절 사용하던 노트북도 100만원 주고 구매해 3년간 쓰다가 80만원에 되팔았다. 부품값이 운 좋게 많이 올랐기 때문이었지만 20만원 주고 성능좋은 노트북을 3년간 사용한 셈이다. 새 상품을 살 때에도 중고 사이트를 애용했다. 백화점 상품권, 각종 기프티콘, 금액권을 10프로 할인 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은 아끼지 않았다. 포항에서 군 생활하며 날 바다에 데려다 주는 기름값, 교보문고에서 구입하는 책,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오면 자린고비를 잠시 가두어뒀다.


전부 투자하기 : 가장 핵심이다. 결국 투자를 병행하지 않으면 큰 돈을 모을 수 없다.

다만 조심스럽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3달 간 3천만원 가량 손실을 입었다. 나는 목표한 시간 내에 1억을 달성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했다. 내가 투자로 수익을 거둔 건 전부 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과 운에 기대지 않았다. 6년 간 투자를 하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군 생활 동안 읽은 투자 서적만 50권이 넘어간다. 하루도 빠짐없이 똑똑한 사람들이 내놓은 각종 분석과 경제 신문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꾸준한 독서와 절대적인 시간 투입을 병행한다면 분명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렇게 25살 겨울에 자산 1억을 달성했다. 이상했다. 사실 막상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는 날 때부터 가진 돈이고, 일찍 취업한 동기들이 2년이면 버는 돈이었다. 어디 아파트를 사기에도 부족한 돈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무조건 이룰거라 끊임없이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끊임없이 피어나는 의심을 누르기 위한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무튼 돈 문제가 해결되자 다음 문제가 다가왔다.






주식 열심히 하며 작성했던 매매일지들과 독서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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