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 풍요의 시대를 앞둔 우리의 자세

데미스 하사비스가 그리는 AGI 이후의 세계

런던의 어느 겨울날, 체스 신동이었던 한 소년이 인공지능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Google DeepMind의 CEO이자 노벨상 수상자가 된 데미스 하사비스는 이제 그 꿈의 실현을 5년 앞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공개된 그의 인터뷰를 듣다 보니, AI 연구자로서 느끼는 설렘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이 교차했다. "지능을 해결하고, 그 지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DeepMind의 창립 비전이 이제는 더 이상 꿈이 아닌 로드맵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관성이 결여된 천재, 아직은 AGI가 아니다

하사비스는 현재의 AI 시스템을 흥미롭게 평가한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문제를 금메달 수준으로 풀면서도, 때로는 고등학교 수학이나 단어의 글자 수 세기에서 실수하는 이 아이러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직 AGI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그는 말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우리나라 R&D 현장을 떠올렸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연구기획서를 작성하고, 특허 분석을 수행하며, 기술 트렌드를 예측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최종 의사결정의 순간에는 인간의 직관과 경험이 필요하다. AI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아직은 '도구'다.


10배의 생산성, 그리고 새로운 격차

"AI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은 10배 더 생산적이 될 것이다."

하사비스의 이 말은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이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파인튜닝, 시스템 지시문 작성 - 이 새로운 리터러시를 갖춘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

국가 R&D 기획 현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뚜렷하다. AI를 활용해 수천 건의 논문을 분석하고, 기술 동향을 파악하며, 미래 시나리오를 그려내는 연구자들이 있는 반면,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는 이들도 있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조직과 시스템의 문제라는 점이다.


급진적 풍요, 그러나...

하사비스가 그리는 '급진적 풍요(Radical Abundance)'의 시대는 매혹적이다. 무한한 청정에너지로 해수를 담수화하고, 질병을 정복하며, 인류가 별을 향해 나아가는 미래. 그러나 인터뷰어의 회의적인 질문처럼, 우리는 이미 충분한 풍요를 가지고도 제대로 분배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백신은 있지만 백신 거부 운동이 일어나고, 기후 변화의 해법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현실. AGI가 기술적 해법을 제시한다 해도, 그것을 수용하고 실행할 사회적 합의와 제도는 준비되어 있을까?


제로섬에서 넌제로섬으로

하사비스의 통찰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인류가 여전히 제로섬 게임의 사고에 갇혀 있는 이유는 지구라는 유한한 자원 때문이라는 것. 급진적 풍요가 실현되면 비로소 넌제로섬 게임이 가능해진다는 희망.

하지만 그는 동시에 인정한다. AGI가 기술적 풍요를 가져다준다 해도, 그것을 공정하게 분배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철학, 새로운 경제 이론, 새로운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진짜 숙제가 아닐까.


5년, 우리에게 남은 시간

하사비스는 AGI까지 5-10년, 50%의 확률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2-3년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더 길게 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확한 시점이 아니다. 그것이 10년이든 20년이든, 우리 생애에 일어날 일이라는 사실이다.

R&D 전략을 수립하는 입장에서, 이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2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 계획이 무의미해질 수 있고, 5년 단위의 국가 R&D 계획도 너무 길 수 있다. 애자일하고 적응적인 접근, 그리고 무엇보다 AGI 시대의 R&D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에필로그: 겸손한 낙관주의

인터뷰 말미에 하사비스는 말한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노벨상 수상자이자 현대 AI 혁명의 주역인 그조차도 미래 앞에서는 겸손하다.

AGI는 분명 올 것이다. 급진적 풍요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류의 번영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새로운 불평등과 갈등의 시대를 열지는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체스 신동이 꿈꾸던 미래가 현실이 되는 시대. 우리는 지금, 그 변곡점 위에 서 있다.


"한때는 과학소설 같았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5개년 계획서에 등장한다. AI R&D 전략플래너로서 느끼는 이 묘한 현실감이, 아마도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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