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펼쳐놓고 보는 방법

물리학이 건네는 새로운 시선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봅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방금 전의 나는 이미 과거가 되었고, 다음 순간의 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늘 '지금'이라는 좁은 틈 사이에 갇혀 살아갑니다.

그런데 만약, 시간을 공간처럼 펼쳐놓고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다면?

이석형 교수의 연구는 바로 그런 상상에서 시작됩니다.


두 거인의 말이 통하지 않았던 이유

물리학에는 두 명의 천재가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 둘 다 우주를 설명하는 완벽한 언어였지만, 이상하게도 서로 만나면 대화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성이론은 시간을 지도처럼 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재듯, 과거에서 미래까지의 '거리'를 잴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하나로 엮인 직물 같은 것이죠.

반면 양자역학은 시간을 벽시계처럼 봅니다. 똑딱똑딱 흘러가는 배경일 뿐, 입자들과 섞이지 않는 별개의 존재입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관점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두 이론을 하나로 합치려고 할 때마다 수학이 폭발했습니다.


영화 필름을 바닥에 펼쳐놓다

이석형 교수는 아주 대담한 제안을 합니다.

"양자역학에서도 시간을 공간처럼 다뤄보면 어떨까?"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스크린만 봅니다. 1초의 장면이 지나가면 사라지고, 2초의 장면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한 장면만 볼 수 있죠.

하지만 영화 필름을 바닥에 쭉 펼쳐놓으면 어떨까요? 모든 장면이 공간적으로 나란히 놓입니다. 1초의 나와 2초의 나, 10초의 나가 동시에 보입니다. 과거와 미래가 마치 서울과 부산처럼 공간상에 펼쳐진 것처럼요.

이것이 QSOT(시간 위의 양자 상태) 이론의 핵심입니다. 시간을 흐르는 강물에서 펼쳐진 지도로 바꾸는 것. 그렇게 하면 상대성이론의 언어로 양자역학을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두 가지 상식적인 규칙

많은 물리학자들이 비슷한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시간을 펼치는 순간 모순이 생겨났죠.

이 교수는 우아한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복잡한 수학 대신, 아주 상식적인 두 가지 규칙만 지키면 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첫째, 일관성입니다. 빨간 공과 파란 공을 던질 확률이 반반이라면, 나중에 펼쳐본 필름에서도 그 확률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수학적으로 보장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둘째, 인과성입니다. 미래의 장면은 과거의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합니다. 갑자기 엉뚱한 장면이 끼어들면 안 되죠.

놀랍게도 이 두 가지만 지키면, 수많은 가능성 중 단 하나의 정답만 남았습니다. 마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딱 맞아떨어지듯이요.


유령의 사진을 찍는 법

이론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증명할 수 없다면 공허합니다. 연구팀은 '양자 스냅샷'이라는 기발한 검증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양자 상태는 유령 같습니다. 보려고 하면 사라지죠. 관측하는 순간 원래 상태가 깨져버립니다.

하지만 특수한 거울을 사용하면, 직접 만지지 않고도 그 흔적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상태와 미래의 상태가 만들어내는 간섭무늬를 통해, 시간의 흐름 속에 숨겨진 연결고리를 사진처럼 찍어내는 것입니다.

펼쳐진 필름을 빛에 비춰보듯, 시간의 구조를 드러내는 방법입니다.


우주를 보는 새로운 눈

이 연구가 완성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블랙홀 내부나 우주가 탄생하던 순간처럼, 시간과 공간이 뒤엉키는 극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생깁니다. 양자 컴퓨터는 시간에 따른 오류를 공간상의 문제처럼 다루어 더욱 완벽해질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초정밀 센서도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제게 가장 흥미로운 건 따로 있습니다.


시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우리는 늘 시간에 쫓깁니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놓칩니다.

이석형 교수의 이론은 물리학 이론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시각을 제안합니다. 시간을 흐르는 것이 아니라 펼쳐진 것으로 보는 시각.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연결된 하나의 풍경으로 보는 시각.

물론 우리는 여전히 '지금'을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커피를 마시며 이렇게 상상해봅니다.

나의 모든 순간들이 펼쳐진 필름처럼 놓여 있고,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가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다고. 지금 이 순간도 그 거대한 그림의 한 장면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다르게 보입니다.

오늘이라는 이 장면이.


물리학은 때로 우리에게 우주뿐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새로운 방식도 가르쳐줍니다. 이석형 교수의 연구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잇는 다리이자, 시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초대장입니다.


참고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2512221125011

참고영상: https://youtube.com/shorts/u6xF7SdMPQ0?si=Sc6z2ld61737nF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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