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강국은 허상이다"
LG에서 과기정통부 장관이 된 남자가 던진 직설적 화두
카메라 앞에 앉은 배경훈 장관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LG그룹에서 20년 넘게 일하다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된 지 두 달. 그에게 AI에 대해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예상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AI 3대 강국이라는 표현 자체가 의미 없는 것 같아요."
순간 스튜디오가 조용해졌다. 정부에서 그토록 강조해온 'AI 3대 강국'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배 장관의 설명은 계속됐다. 미국이 AI 시장의 60%를 가져가고, 중국이 3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나머지 5-10%를 놓고 경쟁하는 게 무슨 의미냐는 것이다. 그는 이어 말했다.
"그 정도 미국, 중국을 따라갈 수 있는 정도의 AI를 만들어갈 수 있는가?"
기업에서 몸담았던 사람다운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화려한 구호보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였다.
20년 넘게 LG에서 일하며 AI연구원장까지 지낸 그는 민간에서 AI 투자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했다. 단기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막대한 AI 투자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ROI가 나올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길을 가야 할까? 배 장관의 답은 의외였다. 오픈AI가 추구하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가 아닌, 특정 분야에 특화된 AI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각 분야별로 과학자면 과학자, 이들이 AI와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 이런 특화된 AI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의료 AI를 예로 들었다. 제대로 된 의료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려면 의사들과 AI 과학자들이 모여서 데이터셋을 '한땀 한땀'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데이터를 가공하는 수준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현실적 판단이었다.
배 장관이 던진 또 다른 폭탄선언은 GPU 확보 목표였다. 기존 2030년까지 5만 장에서 20만 장으로 4배 늘리겠다는 것이다.
"5만 장 갖고 사실 제가 달성해야 될 목표가 있지 않습니까? AI 3대 강국. 과연 3대 강국을 가는데 있어서 GPU 5만 장이면 충분할까?"
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있었다. 엑스AI가 H100 20만 장을 한 번에 사서 글로벌 넘버원을 찍은 사례를 언급하며, 그 정도의 배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흥미로운 건 정부가 진행하는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방식이었다. 5개 기업이 참여해서 6개월마다 평가를 통해 한 개씩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형태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지만, 탈락하는 기업의 몫만큼 남은 기업들에게 더 많은 GPU를 몰아주겠다는 전략이다.
인터뷰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R&D 관련 발언이었다.
"우리나라 연구 과제는 99% 성공한다."
이 한 마디가 우리 R&D 시스템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냈다. 진정한 연구라면 실패 가능성이 높아야 하는데, 거의 모든 과제가 성공한다는 건 도전성이 부족하다는 반증이었다.
배 장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출연연구기관의 PBS(Project Based System) 제도를 폐지했다. 파편화된 소규모 과제들로 인건비를 충당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대형 임무 중심의 과제로 전환하겠다는 의지였다.
인터뷰 막바지에 나온 이야기는 더욱 씁쓸했다. 요즘 KAIST 학생들 중 절반이 병역특례를 포기하고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온다는 것이다. 현역을 다녀오면 자유로워져서 해외로 가거나 의대 편입을 한다는 설명이었다.
"공대에 대한 매력도가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배 장관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있었다.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고 경력직 위주로 소수 채용하는 분위기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의대 열풍의 진짜 이유를 다르게 분석했다. 단순히 피부과, 안과의 고소득 때문이 아니라, 바이오벤처가 성장하면서 의사들이 안정적인 직업과 동시에 벤처 기업가로의 전환 가능성을 모두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배 장관은 2030년까지 2,000명의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특히 한국 출신 해외 연구자들의 귀국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 하는 한국 연구자들에게 기회를 주자."
그는 이들의 고민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미국에서 키우다가, 나중에는 부모님 케어 문제로 한국에 돌아오고 싶지만 적절한 기회가 없다는 현실 말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배 장관이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초등학생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볼 때 예전에는 과학자가 굉장히 많았어요. 지금은 유튜버겠죠."
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라는 단어가 다시 국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과학관에 갈 때 가장 설렜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런 꿈을 되찾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두 시간에 가까운 인터뷰를 통해 느낀 건, 배경훈 장관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화려한 구호보다는 냉정한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었다.
AI 3대 강국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특화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전략. 99% 성공하는 안전한 연구가 아닌, 실패를 감수하더라도 도전적인 연구를 추진하겠다는 의지. 해외로 떠난 우수 인재들을 다시 불러들이겠다는 구체적 계획.
이 모든 것들이 기업에서 20년 넘게 몸담았던 실무자다운 현실감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의 3년 임기 동안 한국의 AI와 과학기술이 어떻게 변할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다. 현실을 직시하고 불편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리더가 등장했다는 사실 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하면 가슴이 설레고 또 미래가 생각날 수 있게 잘 만들어보겠습니다."
배경훈 장관의 마지막 다짐이 공허한 약속이 아니기를 바란다.
출처
더 피플(The People) -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인터뷰
YouTube: https://youtu.be/x-8f16A-QPk?si=d4avFBJaWli13dJE
이 글은 AI R&D 전략플래너 김현철의 관점에서 해당 인터뷰 내용을 분석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