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아시아 AI 수도가 된다는 것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회장이 던진 한 마디가 바꿀 우리의 미래

지난 9월 22일, 뉴욕 UN 총회장에서 벌어진 한 시간 남짓의 회담이 한국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재명 대통령과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마주 앉은 그 자리에서, 핑크 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전 세계 자본을 연결해서 한국을 아시아의 AI 수도로 만드는 것에 온힘을 다하겠다."


12조 5천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경 7천조원을 굴리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수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왜 하필 한국인가?


사실 이 질문이 가장 궁금했다.


AI 강국이라고 하면 누구나 미국을 떠올린다. 실리콘밸리에는 OpenAI가 있고, 구글이 있고, 메타가 있다. 중국도 만만치 않다.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가 저마다 AI 패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한국일까?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타이밍이었다.


지금 전 세계 AI 산업은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1세대 AI 열풍이 주로 미국 서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2세대는 전 세계로 확산되는 시기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AI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닭과 달걀' 딜레마다. 시장이 충분해야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대규모 투자가 있어야 시장이 커진다. 누군가는 먼저 시작해야 한다.


한국이 그 '누군가'가 되기에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게임을 바꾸는 통합 모델


이번 협력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를 하나로 묶은 '통합 모델'이다.


기존의 데이터센터들이 안고 있던 가장 큰 문제는 엄청난 전력 소비였다. ChatGPT 한 번 질문하는 데 드는 전력이 구글 검색 10번분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AI가 확산될수록 에너지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한국이 제시한 해법은 명쾌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소와 AI 데이터센터를 한 세트로 묶어버리는 것이다.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만든 전기를 바로 AI 연산에 쓰고, 남는 전력은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탄소 배출도 줄이고, 전력비용도 절약하고, AI 성능도 높일 수 있다. 일석삼조인 셈이다.


블랙록이 눈독을 들인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단순히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게 아니라, 미래의 표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숫자로 보는 임팩트


구체적인 투자 규모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브리핑에서 흘러나온 단서들을 종합해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대규모 투자라고 하면 통상 수십조 단위"라는 말이 나왔다. 파일럿 투자만 해도 "적어도 수조 단위"라고 했다.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감이 안 올 수도 있는데, 한국의 연간 국가예산이 약 650조원 정도다. 수십조원이면 국가예산의 상당 부분에 해당하는 금액이 민간 투자로 들어온다는 얘기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돈의 규모보다는 파급효과다.


AI 데이터센터 하나를 짓기 위해서는 반도체, 배터리, 통신, 전력, 보안, 냉각 기술이 모두 필요하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발전과 저장 장치, 송배전망까지 결합되면 국내 기업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초대형 통합 프로젝트가 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메모리를,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를, SK텔레콤은 통신 인프라를, 한전은 전력망을, 두산에너솔은 연료전지를 담당할 수 있다. 수백 개의 중소기업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34년의 한국을 상상해보다


10년 후, 2034년의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인천공항에 내린 외국인들이 제일 먼저 보게 될 풍경은 거대한 AI 데이터센터와 그 주변을 둘러싼 태양광 패널들일 것이다. 서울 도심에는 세계 각국의 AI 스타트업들이 몰려들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내고 있을 테고, 부산이나 광주 같은 지방 도시들도 각각의 특색을 살린 AI 특화 클러스터로 발전해 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에너지 자립이다. 한국이 AI 수도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컴퓨터를 많이 돌린다는 뜻이 아니다. 재생에너지 기반의 지속가능한 AI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의미다.


현재 한국의 에너지 자립도는 20% 남짓이다. 나머지 80%는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AI 데이터센터와 연계된 대규모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구축되면, 이 비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에너지 안보와 기술 혁신, 경제 성장을 동시에 잡는 셈이다.


그래도 남는 질문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과연 될까?'하는 의구심이다. 아무리 블랙록이 크다고 해도, MOU는 말 그대로 '양해각서'일 뿐이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은 아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협력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할 때는 '전략적 투자(SI)' 방식을 쓴다. 자신들의 비즈니스 확장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파이낸셜 투자(FI)' 방식이다. 블랙록의 수익이 한국의 성공에 직결되는 구조다. 한국이 아시아 AI 수도로 성장해야 블랙록도 돈을 번다.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우려는 '혹시 우리가 종속되는 건 아닐까?'하는 점이다. 하지만 이 역시 기우인 것 같다. 블랙록은 운용사이지, AI 사업을 직접 하는 회사가 아니다. 그들의 역할은 돈을 대는 것이고, 실제 사업은 한국 기업들이 주도해야 한다.


오히려 블랙록이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같은 AI 생태계의 핵심 플레이어들과 직접 협력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린 셈이다.


변곡점에 선 우리


돌이켜보면 한국은 늘 변곡점에서 기회를 잡아왔다.


1960년대 경제개발 시대에는 제조업으로, 1990년대에는 IT로, 2000년대에는 한류로 세계 무대에 올라섰다. 이제 AI 시대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때가 왔다.


이번 블랙록과의 협력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여정일 것이다. 기술적 난제들, 규제 이슈들, 국제 정치의 변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한국이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과 5G 인프라, 뛰어난 제조업 기반,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래리 핑크가 한국을 "아시아의 AI 수도"로 만들겠다고 말한 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수사가 아니라, 한국의 잠재력을 정확히 꿰뚫어본 통찰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


AI가 바꿀 세상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기회는 왔다. 이제 실행만 남았다.


"한국을 아시아의 AI 수도로 만들겠다"


그 약속이 현실이 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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