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고함
단기 4282년(1948) 7월 20일 뜻밖에도 나를 초대 부통령으로 선임했을 때에 나는 그 적임이 아님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이것이 국민의 총의인 이상 내가 사퇴한다는 것은 도리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심사원려(沈思遠慮) 끝에 받지 아니치 못하였다는 것을 여기에 고백한다. 그 뒤 임연 3년 동안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대체로 무엇을 하였는가.
내가 부통령의 중임을 맡음으로써 국정이 얼마나 쇄신되었으며 국민은 얼마나 혜택을 입었던가.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 부통령의 임무라면 내가 취임한 지 3년 동안에 얼마만한 익찬(翼贊)의 성과를 빛내었던가. 하나로부터 열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야말로 시위소찬(尸位素餐)에 지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 책임이 오로지 나 한 사람의 무위무능에 있었다는 것을 국민 앞에 또한 솔직히 표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매양 사람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일을 하도록 해줌으로써 사람의 적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니, 만약에 그렇지 못할진대 부질없이 허위(虛位)에 앉아 영예에 도취될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자리를 깨끗이 물러나가는 것이 떳떳하고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정부에 봉직하는 모든 공무원 된 사람으로서 상하 계급을 막론하고 다 그러려니와 특히 부통령이라는 나의 처지로는 더욱 그러한 것이다. 내 본래 무능한 중에도 모든 환경은 나로 하여금 더구나 무위케 만들어, 이 이상 고위에 앉아 국록만 축낸다는 것은 첫째로 국가에 불충한 것이 되고, 둘째로는 국민에게 참괴(慚愧) 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국가가 흥망간두(興亡竿頭)에 걸렸고 국민이 존몰단애(存沒斷崖)에 달려 위기간발(危機間髮)에 있건만, 이것을 광정(匡正)하고 홍구(弘救)할 충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동량지재(棟樑之材)가 별로 없음은 어쩐 까닭인가.
그러나 간혹 인재다운 인재가 있다 하되 양두구육(羊頭狗肉)인 가면 쓴 우국 위선자들의 도량(跳梁)으로 말미암아 초야의 은일(隱逸)이 비육(髀肉)의 탄식(嘆息)을 자아내고 있는 현상이니, 유지자(有志者)로서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뿐만 아니라 정부 수립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관의 지위에 앉은 인재로서 그 적재가 적소에 등용된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다가 탐관오리는 도비(都鄙)에 발호하여 국민의 신망을 표실(表失)케 하여 정부의 위신을 훼손하고 나아가서는 국시의 존엄을 모독하니, 이 어찌 신생 국민의 눈물겨운 일이 아니며 마음 아픈 일이 아닐까.
그러나 이것을 그르다 하되 고칠 줄 모르며 나쁘다 하되 바로잡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의 시비를 논하던 그 사람조차 관위(官位)에 앉게 되면 또한 마찬가지로 탁수오류에 휩쓸려 들어가고 마니, 그가 참으로 애국자인지 나로서는 흑백과 옥석을 가릴 도리가 없다.
더구나 이렇듯 관기가 흐리고 민정이 어지러운 것을 목도하면서도 워낙 무위무능하지 아니치 못하게 된 나인지라 속수무책에 수수방관할 따름이니 내 어찌 그 책임을 통감 않을 것인가. 그러한 나인지라 나는 이번 결연코 대한민국 부통령의 직을 이에 사퇴함으로써 이 대통령에게 보좌의 직책을 다 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씻으려 하며, 아울러 국민들 앞에 과거 3년 동안 아무 업적과 공헌이 없음을 사(謝)하는 동시에, 앞으로 나는 일개 포의(布衣)로 돌아가 국민과 함께 고락과 사생을 같이하려 한다.
그러나 내 아무리 노혼(老昏)한 몸이라 하지만 아직도 진충보국의 단심과 열성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았는지라, 여생을 조국의 완전 통일과 영구 독립에 끝긑내 이바지할 것을 여기에 굳게 맹세한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은 앞으로 더욱 위국진층의 성의를 북돋아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여 주시었으면 흔행(欣幸)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