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결핍의 시대, 베티 블루를 다시 꺼내 든다는 것

불완전한 온도를 견디는 타자에게

by agon바두슴
영화 베티블루 37.2°

우리는 지금 서로를 만지지 않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만져서는 안 되고, 만져도 공허한, 그런 시대.

SNS 안에서 웃고 울고 싸우면서도, 정작 누군가의 체온에 닿는 일은 점점 더 어렵다. 인간은 ‘언제든 연결되어 있다’고 믿지만, 실은 서로의 삶에 아무런 접촉도 하지 못한 채 각자의 방에서 서서히 말라 간다.

이런 시대에 베티 블루 37.2° 같은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어쩌면 불편한 일이다.
이 영화는 접촉으로 시작해 붕괴로 끝나고, 사랑의 과열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파국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작은 위로를 받는다.
“나만 이렇게 외로운 게 아니었구나”라는 미약한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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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체온이었을까

영어권 비평가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를 “베아트리체 달의 몸을 소비하는 남성 시선의 잔혹한 연출”이라고 비난했다. 수많은 비평도 여기에 동의했다.
하지만 최근의 재평가는 조금 다른 말을 건넨다.

사랑이 상대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를 붙잡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이라고.

베티의 37.2°C는 단순한 체온이 아니라 삶을 버텨내기 위한 마지막 온도 같다.
한 인간이 자신의 생을 지탱할 수 없을 때, 그는 사랑이라는 체온에 모든 것을 맡긴다. 그러다 상대가 떠나는 순간, 자기 자신의 체온도 함께 꺼져버린다.

이 영화는 질문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서로를 붙잡는 그 ‘온도’는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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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이 불가능한 시대, 우리는 어떻게 손을 뻗는가

지금 우리는 많은 감정들을 “화면을 통해”만 주고받는다.
슬픔, 외로움, 애정, 위로, 칭찬까지도 텍스트로만 전달되고, 우리의 진짜 손은 공중에 떠 있다.

베티가 조르그에게 했던 모든 파국적 행위는 “붙잡아달라”는 비명을 감정의 끝에서 내지른 것일지 모른다.
그 비명은 자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접촉 결핍의 다른 얼굴이다.

가까이서 말할 수도, 안아줄 수도 없을 때
우리는 때때로 상대에게 상처를 내서라도 나를 보라고 외친다.
접촉을 잃어버린 시대는 이렇게 누군가를 더 많이 다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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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독자에게 이 영화를 권하는 이유

당신이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베티의 광기보다 당신의 외로움이 먼저 생각날 것이다.

왜냐하면 베티 블루는 결국 한 사람의 내면이 고통과 사랑 사이에서 어떻게 부서지는지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 부서짐의 방식이 낯설지 않다.

지금의 우리는 관계 바깥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시간이 너무도 길다.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화면 뒤에서 우리가 얼마나 아파하며 살아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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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오늘만큼은 스스로를 조금 더 안아줄 것

이 영화는 당신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랑도 완벽할 수 없고,
우리는 결국 서로의 불완전함으로부터
조금씩 체온을 빌려 살아간다.”

접촉결핍이라는 시대를 살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버티는 당신,
혼자가 아니다.

오늘 하루, 당신이 스스로에게 내밀 수 있는 손이 하나 있다면 그걸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의 37.2도가
다른 누군가에게도 작은 온기로 닿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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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아주 조용한 응원

오늘을 견뎌낸 당신에게
내가 건넬 수 있는 응원은 아주 짧다.

“당신은 살아 있다.
그리고 아직 따뜻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오늘은 충분하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를 권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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