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믿어도 믿고 기대하라고
— 이 사랑 통역 되나요?(넷플릭스) 차무희가
확신은 이미 답을 가진 사람의 언어다.
빈틈이 없고, 흔들림이 없다.
그러나 차무희가 건네는 말은 다르다.
“당연히 안 될지도 모르니까 당연히 불안하죠.
그래도 어쩌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거죠.”
그는 가능성을 부풀리지 않는다.
실패를 지워버리지도 않는다.
대신, 불안을 끌어안은 채 출발한다.
차무희가 주는 것은 결과가 아니다.
보장도 아니다.
그가 주는 것은
‘혹시나’라는 자리다.
확신이 들어설 자리를 조금 비워 두고
믿음이 머물 시간을 남겨 두는 태도.
“안 믿어도 믿고 기대하라”는 말은
억지가 아니다.
함께 견디겠다는 고백에 가깝다.
믿음과 기다림의 알레고리
위로는 그래서 크지 않다.
다만, 포기하지 않은 채
조금 더 기다리겠다는 사람의 숨결이다.
차무희가 주는 것.
완성된 빛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보려는 마음.
지긋하게 위로를 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