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입장에서 결정하지 않기

직관으로 길을 내고, 나만의 '끝힘즐'로 성과

by agon바두슴


​나이가 들어도 직장은 여전히 파도가 치는 곳입니다. 업무의 난이도보다 힘겨운 건 결국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매번 마주하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응대 방식이지요.


그 소란스러운 현장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나는 정교한 계획표 대신 나의 직관을 믿기로 했습니다.




계획보다 직관, 상상력이라는 이름의 용기


​사람들은 흔히 치밀한 계획이 성공을 보장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삶의 변수는 언제나 계산기를 두드리는 손길보다 빠릅니다. 그래서 나는 내 안의 내비게이션, '직관'에 몸을 맡깁니다.


직관은 단순히 감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이 농축되어 찰나에 터져 나오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탭니다. 상상력은 그 자체로 용기의 한 형태입니다.

Imagination is its own form of courage
(House of Cards#시즌3_ 에피소드 8_Chapter34)


보이지 않는 것을 꿈꾸고, 가보지 않은 길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 그것은 현실의 벽 앞에 주저앉지 않겠다는 가장 적극적인 저항이자 용기입니다. 나는 이 상상력을 동력 삼아 내 일의 가능성을 힘껏 넓혀갑니다.


나를 지탱하는 일의 삼각대: 끝까지, 힘껏, 즐겁게


​용기 있게 상상했다면, 그다음은 태도의 문제입니다.


​첫째, 끝까지(의지) — 시작보다 귀한 것은 마무리입니다. ​상상력이 문을 열어주었다면, 그 문을 닫고 나오는 것은 의지의 영역입니다.


누구나 화려하게 시작할 수는 있지만,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고 '끝'을 보는 사람은 드뭅니다. 예상치 못한 장애물과 지루한 반복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일을 대하는 첫 번째 예의입니다.


​둘째, 힘껏(집중과 상상력) — 가능성의 밀도를 높이는 몰입입니다. ​단순히 시간만 채우는 노동은 나를 갉아먹을 뿐입니다. 나는 매 순간 힘껏 임합니다.


이때의 '힘'은 완력이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일의 외연을 넓히는 집중력입니다.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잠재된 가능성을 현실로 끌어올릴 때, 일은 비로소 생명력을 얻습니다.


​셋째, 즐겁게(태도) — 치열함 끝에 만나는 유연함입니다. ​의지와 집중이 팽팽한 활시위라면, 마지막은 그 시위를 견디게 하는 태도의 여유입니다.


억지로 짊어진 짐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작은 의미를 발견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낙관. 이 즐거움이야말로 지치지 않고 다음 산등성이를 넘게 하는 유일한 에너지원입니다.


​이 세 가지가 맞물릴 때, 일은 비로소 나를 갉아먹는 노동이 아닌 나를 완성하는 과정이 됩니다.


​타인의 소음과 비겁한 타협으로부터의 독립


​직장 생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타인의 시선에 나를 가두는 일입니다.


"이번에 잘하면 다 봐주겠다"는 식의 가당치 않은 회유나, 결과에 대한 무책임한 비난을 나는 단호히 '적극 사양'합니다.


내 성과와 존재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나와 나의 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신성한 대화여야 합니다. 남을 의식하느라 내 결이 무뎌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어떤 순간에도 '약자의 입장'에서 결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상황이 불리하다고 해서 두려움에 기반한 선택을 내리는 것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일입니다.


비록 폭풍우 한가운데 있을지라도, 가장 당당한 주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결정하겠습니다.
​결국 일터는 나를 증명하는 곳이 아니라, 나의 철학을 실천하는 장소입니다.


직관으로 방향을 잡고, 상상력이라는 용기로 무장한 채, 오늘도 나는 나만의 속도로 '끝까지, 힘껏, 즐겁게' 걸어갑니다. 타인의 평가는 저 멀리 흐르는 강물에 던져두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