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누군가 반드시 도와줄 것이라는
내 아이들의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내가 남긴 재산이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누군가가 반드시 그들을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일지 모른다.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주인공은 가족과의 드라이브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도와달라는 절규를 주변 사람들은 차갑게 외면했고, 그는 분노와 자책 속에서 무너졌다. 그러나 그 고통은 그를 새로운 존재로 바꾸어 놓았다. 남을 돕지 않는 세상에 맞서, 그는 ‘슈퍼맨’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을 잃어버리기로 했다. 불 속으로 뛰어들기 전 도움에 울부짖는 아이 앞에서 그는 외친다.
“과거는 바꿀 수 없어. 하지만 미래는 달라.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는다면… 내가 누구지? 내가 누구야?”
그 절규는 사실 아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었다.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바로 신뢰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린다. 갓 나온 나비의 몸은 연약하다. 그러나 그 연약한 몸은 이미 세상과의 구조적 상응을 전제한다. 날개는 바람을 신뢰하고, 더듬이는 향기를 신뢰하며, 긴 입은 꽃의 꿀을 신뢰한다. 나비가 세상에 몸을 내맡길 수 있는 것은 세계가 자신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암묵적 신뢰 덕분이다.
칠레의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움베르토 마투라나는 이를 “나비와 세계 사이의 구조적 상응은 곧 암묵적인 신뢰의 표현”이라 했다.
우리 삶 또한 다르지 않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내가 쓰러졌을 때 누군가 일으켜 줄 것이라는 믿음, 내가 잘못했을 때 누군가 용서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내가 떠난 뒤에도 누군가 내 자리를 이어 줄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없다면 인간은 불안과 고립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암묵적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약이자, 우리가 세상에 몸을 내맡기는 방식이다. 그 신뢰가 무너질 때 우리는 괴물이 되고, 다시 신뢰를 회복할 때 우리는 슈퍼맨이 아니라도 서로의 구원자가 된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 묻는 일은, 내가 세상과 맺고 있는 신뢰의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를 신뢰할 때,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나비처럼, 아이처럼, 그리고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