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메데인에서 퍼레이드를 보다

나홀로 남미 여행기-10

by 나일라

콜롬비아의 제2의 도시 메데인(Medellín)은 ‘영원한 봄의 도시’라고 불린다. 이는 메데인이 사계절 내내 봄처럼 온화한 기후를 가졌기 때문이다. 봄 하면 생각나는 건 꽃! 콜롬비아는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2위의 꽃 수출국이다. 수출되는 꽃의 대부분은 메데인이 위치해 있는 안티오키아 지역에서 재배된다고 한다. 그래서 봄의 도시라는 별칭이 붙은 건가. 영원한 봄의 도시 메데인에서 8월은 일 년 중 가장 큰 꽃 축제가 열린다.


꽃으로 만든 새.
꽃 축제 기간 동안에는 쇼핑몰 안에도 꽃으로 전시장을 만든다고 한다.



메데인의 꽃 축제를 ‘페리아 데 라스 플로레스(Feria de las Flores)’ 라 부르며, 스페인어로 '꽃의 축제'라는 뜻이다. 2025년에는 8월 1일부터 10일까지 축제 기간이었다. 축제 기간 동안 예술가들의 공연과 각종 퍼레이드가 있다.


꽃 축제 기간의 마지막날에는 하이라이트 행사인 ‘실레테로스(Silleteros) 퍼레이드’가 열린다. ‘실레테로스(Silleteros)’는 꽃을 키우는 농부를 말하며, 500명이 넘는 실레테로스들이 꽃으로 만든 정교한 장식물인 '실레타스(Silletas)'를 등에 지고 2.4km의 거리를 행진한다고 한다. 이 퍼레이드가 제일 궁금했지만, 나는 축제 마지막날에는 다른 나라로 이동을 해야 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다른 축제 일정들에 대해서는 별로 알아보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메데인에 도착해 우버 택시를 타고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기사님이 내일 여기서 퍼레이드가 있다고 말하셨다. 나는 실레테로스 퍼레이드만 축제 기간에 하는 줄 알고 있었고 스페인어로 들은 내용이라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나 싶었다. 그래서 바로 기사님께 달력을 보여주며, 날짜가 맞는지 확인하였다. 그랬더니 기사님은 다시 한번 내일 자동차 퍼레이드가 열린다고 설명하셨다. 우와! 내가 스페인어로 알아들었다니! 선생님 보고 계십니까!

그 성취감에 자동차 퍼레이드는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레이드를 하는 건 알게 되었는데 정확히 언제, 어디서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구글에 영어로 메데인을 검색하니 ‘페리아 데 라스 플로레스(Feria de las Flores)’에 대한 사이트가 있었다. 이거구나! 사이트에 안내된 내용을 보고 퍼레이드가 열리는 장소와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사이트에 안내된 자동차 퍼레이드 코스.


자동차 퍼레이드에는 약 17km의 거리를 390대의 차가 행진한다.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차량에는 1900년대부터 1990년 사이에 만들어진 올드카들이 있다. 이 대목이 또 구미가 당겼다. 퍼레이드는 오전 10시부터 볼리바리아나 대학교(Pontifical Bolivarian University)에서 출발하여 EAFIT 대학교(EAFIT University Alumni Center)까지 행진이 이어진다. 지도로 이동 경로를 확인해 보니, 내가 머물렀던 엘 포블라도 지역에서는 포블라도 역(Estación Metro Poblado) 주변을 지나갔다. 오케이, 그렇다면 포블라도 역으로 가면 되겠군!

이제 궁금한 건 시간이었다. 행진하는 경로는 차로 14분 정도 걸리는 걸로 나왔다. 보통 행진을 하면 천천히 하긴 할 테니까... 음, 얼마나 걸릴라나. 고민 끝에 시작 시간인 10시보다 30분 늦은 10시 30분까지 포블라도 역으로 가는 것으로 정했다.



포블라도 역(Estación Metro Poblado)으로 가니, 경찰관들이 많이 있었다. 한 경찰관에게 퍼레이드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친절하게도 퍼레이드가 지나가는 도로까지 함께 걸어가며 안내해 주었다. 남미 여행을 하며 1년 치 따뜻함은 다 받은 거 같다. 아래 지도 그림처럼 포블라도 역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도로 옆에서 퍼레이드를 기다리면 되었다.




퍼레이드가 있을 도로에는 이미 몇몇 사람들이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의자를 모아두고 빌려주는 사람이 있길래 현금을 주고 의자를 빌렸다. 이때만 해도 몰랐다. 내가 너무 빨리 왔다는 것을. 퍼레이드 출발이 10시고, 내가 퍼레이드를 보는 위치가 중·후반 구간이니까 넉넉하게 10시 30분에 맞춰오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차가 안 온다. 그렇게 기다린 시간은 총 두 시간 삼십 분. 맛집도 줄 서서 기다리지 못하는 나에게는 역겁의 시간이었다. 매우 빨리 갔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있을 수는 있었지만 울퉁불퉁한 땅 위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어 자세가 많이 불편했었다. 그래도 기다림을 즐기는 콜롬비아 사람들을 보며 나도 그런 마음을 본받으려 마음을 다잡았다.


처음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이 때는 이게 사람이 없는 건지 몰랐다.
좌) 돈주고 빌려온 초록 의자. 우) 점점 사람들이 가득찼다.


퍼레이드를 기다리는 사람들.


거리에는 한 번씩 풍선과 솜사탕을 파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어릴 때, 운동회를 하면 보이던 솜사탕 파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내 옆 자리에는 콜롬비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중절모를 쓴 가족들이 있었다. 구성원은 왕 할머니와 중년의 남매들, 그리고 그 자녀들로 대략 10명 이상의 대가족이 퍼레이드를 보러 왔었다. 그들은 가져온 술과 간식들로 행렬을 흥겹게 기다리셨다. 나에게도 간식을 주시려고 했는데 행렬을 언제까지 기다릴지를 모르니 화장실 가고 싶을까 봐 정중히 사양했다. 이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도 왕 할머니께 한 번씩 가서 할머니를 챙기는 모습이 참 정겹고 살뜰하게 느껴졌다. 나는 기다림에 너무 지쳐 옆 자리 가족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했다. 아닌가. 흘러나오는 노래가 내 흥을 돋우지 못해서인 거 같기도 하다. 라틴 음악도 좋지만 역시 나는 케이팝을 들어야 신이 난다.

12시 50분. 마침내 퍼레이드 행렬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퍼레이드 행렬이 들어왔다.
시선을 강탈한 내 옆자리 할머니 손. 손만 봐도 신남이 느껴진다.
처음 행렬에는 콜롬비아 경찰, 군인, 브랜드 가게 차량들이 등장한다.



경적을 울리며 흥을 돋우는 문화인 거 같다. 소리 주의!




퍼레이드가 시작된 지 한 시간 정도 되었을 때, 드디어 보고 싶었던 올드카 행렬이 들어왔다. 올드카는 실제 차의 주인들이 직접 차를 운전해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것이고, 차량마다 퍼레이드를 위해 장식하고 꾸민 가족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나라의 명절처럼 가족들이 함께 하는 축제이구나!



올드카 행렬이 시작되었다.





퍼레이드가 끝날 무렵, 사람들이 너무 몰리기 전에 먼저 자리를 떠났다. 퍼레이드가 시작되면 경찰들이 횡단보도를 모두 통제해 길을 건널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차도가 보였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비를 맞으며 나는 사람들과 함께 차도 옆 길을 걸어갔다. 도로가 통제되고 사람들이 많으니 이 날만큼은 이 길로 다녀도 괜찮은 거 같았다.


좌) 차도 옆 길을 따라 길을 건너갔다. 우) 위에서 본 퍼레이드의 모습.




이후 남미 여행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스페인어 수업을 듣던 중, 교재에 ‘페리아 데 라스 플로레스(Feria de las Flores)’에 대한 지문이 나왔다. 글의 내용은 꽃 축제 기간의 마지막날에 열리는 ‘실레테로스'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농부에 대한 이야기였다. 너무 반가웠고 스페인어 수업을 함께 듣는 사람들에게 여행을 하며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색다른 경험을 한 거 같아 더 오래 기억될 거 같다.


스페인어 교재에서 본 ‘실레테로스' 퍼레이드.


마지막은 안녕! 하는 사진.


매거진의 이전글콜롬비아 메데인의 코무나 13과 케이블카 탐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