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여행기-7
안탈리아 콘얄티 해변에서 있던 일이다. 콘얄티 해변은 자갈이 있는 해변으로 안탈리아에서 해수욕을 즐기러 가는 대표적인 해변 중 하나이다. 겨울이었지만 나는 바다 풍경을 사진 찍고 싶어서 이곳을 방문했다. 바다를 충분히 감상하고 다시 안탈리아 시내로 넘어가려 했다. 안탈리아 시내와 콘얄티 해변은 차로 20분 거리였기에 미리 화장실을 다녀온 후에 탈 것을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콘얄티 해변 주변에는 해변 공원이 있었다. 공원 안을 걷다가 화장실 표지판이 보여 가 보니, 남녀 각각 하나씩의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세면대와 변기가 함께 있는 구조였다. 나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문제의 시작이었다. 볼일을 마치고 화장실을 나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평소 내 손은 멀쩡한 것도 잘 망가트린다.
“내 손이 또 빗나간 걸 거야. 진정해. 다시 해보자”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걸쇠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이렇게 저렇게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소용없었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구조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요! 도와주세요! 누구 없나요?”
문을 세게 치며 도와달라고 외쳤다. 내 목소리가 작나 싶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외치며 화장실 문을 발로 계속 찼다. 얼마나 소리쳤을까. 5분은 넘게 문을 두드리고 외쳤던 거 같다. 예전에 몽골 여행을 할 때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다. 몽골 여행을 하면 전통 가옥인 게르에서 생활하게 될 때가 많다. 게르는 캠핑장 같다. 캠핑장의 공용 화장실과 샤워장에서 씻는 느낌이다. 그마저도 없는 게르도 많다. 나는 게르의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다가 샤워장의 문이 갑자기 열리지 않아 갇힌 적이 있었다. 그때는 습한 공기에 숨쉬기가 힘들었어서 금세 겁이 바짝 났었다. 그 기억이 되살아나며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았다. 어딘가에 갇힌 다는 건 머리가 바짝 서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공포다.
나의 마음은 점점 공포에 휩싸였고, 머리가 아득해졌다.
‘생각을 하자.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일단 여기는 공원 내에 따로 동떨어진 화장실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수 있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던가. 나한텐 핸드폰이 있었고 아직 배터리도 충분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대사관에 연락하는 것뿐인가?
목이 점점 아파오고 계속 소리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건 대사관에 연락해야겠다는 쪽으로 점점 마음이 기울었다. 그런데 그때!
“누구 있으세요?”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문이 안 열려요. 도와주세요!”
나는 너무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다급해져서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잠깐 기다리세요!”
그러더니 곧 열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아, 공원 관계자인가? 열쇠가 있으면 문도 열리겠지.
그 순간 나갈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이 스쳤다.
그런데 열쇠를 넣고 돌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자 문 너머에서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의논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그들이 말했다. 열쇠를 돌릴 테니, 나도 안에서 문의 걸쇠를 함께 돌려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손으로 걸쇠를 돌려보았다. 하지만 문은 여전히 꿈쩍 하지 않았다. 문 너머에서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 시도에도 문이 열리지 않자, 한 남자가 외쳤다.
“문에서 멀리 떨어지세요! “
나의 형편없는 영어 실력도 위급한 상황에서는 살아나나 보다. 그의 말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 들렸다. 정확히 이해되었다.
”네! 저 떨어져 있어요! “
그러자 그는 문을 발로 차기 시작하며 힘으로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쾅! 쾅! 쾅!
몇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바깥 풍경이 보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저 멀리에선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의 남성이 도끼를 들고 오고 있었다.
나를 구해준 두 남자는 장년의 남성과 청년이었다.
도끼까지 들고 온 모습에 감사하여 눈물이 핑 돌았지만 꾹 참았다. 풀린 다리에 힘을 주고 문 밖으로 나섰다.
나를 구해준 청년이 나에게 이쪽으로 오라며 화장실 옆 한 식당으로 데려갔다. 그리곤 물을 주며 "차도 마실래?"라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는 번역기를 사용해 나에게 “get will soon”이라는 말을 보여주었다. 눈물이 팽 돌았지만 꾹 참았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정으로 가득해지는 순간이었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나도 번역기를 켜서 튀르키예어로 "당신은 천사입니다" 라는 말을 보여주며 튀르키예어로 감사하다는 말인 "테셰큘렐 에데림" 을 외쳤다. 그리고 식당을 나와 갇혀있던 화장실 앞에 있던 장년의 남성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대사관에 연락하기보다는 지도로 검색하여 주변 가게를 찾아보자. 주변 가게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는 게 가장 빠르게 해결될 거 같다. 그러려면 핸드폰 배터리를 잘 챙겨야겠지. 해외로 혼자 여행을 다니는 분들은 안전을 위해서 핸드폰을 꼭 잘 챙겨주세요.
튀르키예 여행을 하면서 마음이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는데 안탈리아에서 모두 회복이 되었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 다른 여행자를 도와주자는 마음을 가지며 여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