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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 아티스트 Feb 03. 2023

5천만원을 날리고 깨달은 브랜딩의 힘

https://www.instagram.com/p/ClninyrB908/?utm_source=ig_web_copy_link

브랜딩이라는 신문물을 알기 전의 저는, 정글 속에 사는 한 마리의 순진한 치타였습니다. 언젠가 내 카페를 차리겠다는 포부를 안은 채 호텔조리학과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죠. 맛이 좋고 플레이팅이 멋진 음식만 만들면 성공한다는 믿음으로 요리에만 매달렸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가게 문을 닫으면 실패할 수가 없다.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하면 된다...라는 조언이 저를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제 상상 속의 카페는 세련된 인테리어, 좋은 원두를 쓰는 커피, 비주얼이 근사한 디저트로 이루어진 장소였습니다. 경영이나 마케팅은 구석에 먼지처럼 떠오르는 존재였죠.


그러던 어느 날 제 생각을 깨트릴 기회를 잡았어요. 바로 어머니와 함께 카페를 차리게 된 겁니다!



우리는 성공할 수 있을 거야!


경영이라고는 1도 모르던 저는 희망에 잔뜩 부풀어 있었습니다. 다른 카페보다 더 예쁜 디저트, 더 특이한 메뉴를 내놓으면 중간은 갈 거라고 믿었죠. 로맨틱한 인테리어와 어머니의 손재주까지 합쳐졌으니 분명히 잘 팔릴 거라 생각했습니다. 



오픈 초반에는 매출이 저조했지만 세 달 정도가 지나자 차츰 올랐어요. 손익분기점을 앞둔 시점에는 이대로 쭉 잘 될 거라는 생각에 매일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매출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맴돌았습니다. 커피 머신을 손보고, 비싼 원두를 들이고, 좋은 버터를 써도 손님들은 우리의 노고를 몰라주었어요. 게다가 쿠폰 제도가 엉성해 손님들이 불쾌해하며 돌아가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여러 매장에서 일을 해봤지만 친절함과 성실함으로는 단 한 번도 지적받은 적이 없는 저는 무척 당황스러웠어요. 친절함만으로는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그 때 배웠습니다.


저만 문제였으면 차라리 다행이었을텐데요. 카페의 효자 메뉴였던 마카롱도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다들 저희 가게 마카롱이 정말 맛있다며 칭찬일색이었는데, 딱 한 가지 컴플레인이 지속적으로 들어왔어요. 바로 숙성이 덜 되어 당일에 먹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원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고, 숙성일을 미리 공지하자는 결론이 나왔지요. 그래서 카운터 앞에 '2~3일 후 먹으면 더 맛있으니 숙성 후 먹어달라'는 공지문을 붙였습니다. 쿠폰은 아예 없어버렸고요. 


또 메뉴의 수를 늘리고, 필링을 더 많이 넣어주고, 가격도 20% 할인해서 판매했어요. 이런 노력 덕분인지 다행히 매출은 전처럼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전재산이었던 5천만 원을 투자한 카페는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바로 건너편에 다른 카페가 생기자 매출이 쭉쭉 떨어졌거든요. 카페 창업이 실패로 돌아가며 저의 무지갯빛 바리스타 라이프도 막을 내렸습니다. 카페가 망한 이유는 셀 수 없었어요. 상권 분석 실패, 경영 실패, 마케팅 부재, 고객 관리 미흡, 제품의 일관되지 못한 퀄리티. 이 모든 실패 요인을 하나로 통틀어 '브랜딩·마케팅 부재'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건 얼마 전의 일이었습니다.


회사에서 브랜딩을 직접 해보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했는지 알겠더군요. 마케팅 예산을 최대한 아끼고,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공동 창업자끼리 방침이 달라 어떤 날은 박리다매, 어떤 날은 프리미엄이 되고...... 실패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브랜드가 하고 싶긴 하니?



작년 여름, 저는 공간 브랜딩 프로젝트를 위해 브랜딩이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한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홍대에서 강남, 강남에서 서촌까지 부지런히 도 돌아다녔죠. 카페, 식당, 소품샵, 팝업스토어, 빈티지 옷가게까지 잘 되는 곳은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브랜딩'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었죠. 기억에 남는 곳을 꼽자면 작은연필가게 흑심, 알디프의 세컨브랜드인 크림차 팝업스토어, 텅플래닛이었습니다. 



(출처│크림차 공식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p/ClninyrB908/?utm_source=ig_web_copy_link)


크림차는 '꿈'이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크림코니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오프라인 매장은 방문객들의 꿈 속이며, 크림차는 꿈을 바탕으로 만든 차예요. 매장 안에는 '오늘의 꿈'을 출력할 수 있는 키오스크가 있답니다. 스텝분들이 모두 하나의 컨셉을 얘기하며, 매장의 모든 요소들도 브랜드의 세계관과 이어져요. 


(출처 : 크림차 공식 인스타그램 @creamchaa.official)

                

또 드림 오더존이라는 매대에 주문서를 배치했어요. 커스텀의 가짓수가 많아도 헷갈리지 않도록 추천 조합과 재료 소개가 적힌 안내판이 걸려 있었고요. 그래서 처음 크림차를 방문하는 고객들도 어렵지 않게 주문할 수 있고, 특별한 경험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크림차의 SNS를 보면 마케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어요. 팝업스토어 오픈 전부터 브랜드를 소개하고 알렸더라고요. 또 팝업스토어 이벤트 참여자를 모집하며 자연스럽게 방문을 유도하고 있어요. 브랜드 컬러와 컨셉이 돋보이는 콘텐츠가 나비효과를 일으켰고요.



크림차 팝업스토어처러 브랜딩이 잘 된 곳을 다녀오니 부끄러움이 들더군요. 신데렐라 언니에서 문근영이 말했던 "발레가 하고 싶긴 하니?"라는 말이 귀를 맴돌았습니다. 왜 우리는 마카롱을 팔면서도 마카롱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지금 다시 카페를 차린다면 무작정 열기 전에 브랜딩을 먼저 했을거예요. 주머니가 가벼운 어린이들도 덥석 덥석 즐기는 2천원의 행복인지, 프랑스 유학의 향수가 느껴지는 5천원의 향수인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정립했을 겁니다. 또 꽁꽁 숨기던 브랜드 스토리를 콘텐츠로 활용해 SNS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테고요.


인스타그램 후기 게시물 10개의 처참한 흔적


아무것도 몰라 놓쳤던 오픈 마케팅도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저희 매장에 방문하는 손님 수에 비해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리뷰는 극히 적었는데요. 돌아간다면 바이럴이 될 수 있도록 인플루언서에게 협찬을 해주며 상위 키워드를 점유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아쉽네요!



하지만 후회만 남은 것은 아니에요. 다시 한번 창업에 도전하기 전에 브랜딩과 마케팅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니까요. 5천만원을 날리고서야 브랜딩의 힘을 깨달았지만, 5천만 원을 날리고도 브랜딩을 몰랐다면 상황은 더 나빠졌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제 섣불리 창업하기보다는 많은 브랜드의 흥망성쇠를 함께 해보려 합니다. 지금은 브랜딩과 마케팅이 탄탄하다면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저처럼 '제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분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여러분도 창업을 하며 브랜딩 혹은 마케팅의 힘을 깨달은 순간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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