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질과 연애시

by 진경환


“천하의 여러 나라가 제왕을 일컫지 않은 나라가 없었는데, 오직 우리나라만은 끝내 제왕을 일컫지 못하였으니, 이같이 못난 나라에 태어나서 죽는 것이 무엇이 아깝겠느냐! 너희들은 조금도 슬퍼할 것이 없느니라.”고 한 뒤 “내가 죽거든 곡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에 대해 통용되는 평가는 다음과 같다.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자유분방하여 스승이 따로 없다가 20세가 넘어서야 성운(成運)을 사사하였다. 교속에 얽매이기보다는 창루(娼樓)와 주사(酒肆)를 배회하면서 살았다. … 한때 글공부에 뜻을 두어 몇 번 과거에도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하였다. 창루와 주사에서 벗어나 현실세계로 뛰어든 그의 눈에는 부조리와 당쟁만이 가득 찼다. … 서로 헐뜯고 비방하고 질시하면서 편당을 지어 공명을 탈취하려는 속물들의 비열한 몰골들이 그의 호방한 성격에 용납되지 않았다. 벼슬에 대한 선망과 매력, 흥미와 관심은 차차 멀어져가고 환멸과 절망과 울분과 실의가 가슴 속에 사무쳤다. 그러기에 10년간의 관직생활은 아무런 의의가 없었다. 벼슬에 환멸을 느껴 유람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숱한 일화를 남겼다. 기인이라 하고 또 법도에 어긋난 사람이라 하여 글은 취하되 사람은 사귀기를 꺼렸다.”


그의 이러한 성향과 태도는 매월당 김시습과 유사해 보이는데, 이들 광기 어린 천재를 생각할 때면 ‘스키조-키드(Schizo-Kid)’라는 말이 떠오른다. 1980년대 초 일본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를 발 빠르게 소개한 아사다 아키라(淺前彰)는 그의 『도주론(逃走論)』에서 인간의 유형을 파라노이아(paranoia)형과 스키조프레니아(schizophrenia)형으로 나누었다.


그에 따르면, 전자는 편집증형으로 모든 것을 적분하면서 살아간다. 그는 돈이면 돈, 추억이면 추억, 행복이면 행복을 마구 쌓아두려고 온통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주저앉은 인간’이다. 그는 가정을 이루고 그곳을 중심으로 영토의 확장을 도모하는 동시에 어떤 종류가 되었든 재산을 축적하려 애쓴다. 아내를 성적으로 독점하고, ‘새끼’들 엉덩이를 두드리며 ‘가정의 발전’을 도모한다. 이것은 도중에 멈추게 되면 지는 게임이다. 그는 ‘그만 둘 수 없고 멈출 수도 없다’고 계속 되뇌면서 결국 편집증적 인간이 되어 가고, 덕분에 자본주의는 번성․발전한다.


반면 후자는 분열증형으로, 항상 시점 제로에서 미분하려고 한다. 이 사람은 ‘도망치는 사람’이다. 그는 무슨 일이 있으면, 머물러 생각지 않고 아무튼 도망치려 한다. 그래서 그는 가정이라는 세상의 중심, 곧 배꼽(omphalos)을 갖지 않고 끝임 없이 경계선상에서 움직인다. 근래 한국의 들뢰지안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유목’이니 ‘노마드’니 ‘탈영토화’니 하는 말들이 바로 이런 유형의 인물과 관련이 있다. 굳이 나누어보자면 임제는, 흔치 않게도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백모시 치마 적삼 잇꽃 물든 진분홍 허리띠 / 白苧衣裳茜裙帶

처자들 손에 손잡고 그네타기 겨루네 / 相携女伴競鞦韆

백마 탄 저 총각 어느 댁 도령인고 / 堤邊白馬誰家子

금채찍 비껴 들고 뚝가에 서성이네 / 橫駐金鞭故不前

두 뺨은 발그레서 땀이 송골송골 / 粉汗微生雙臉紅

아양스런 웃음소리 반공중에서 떨어지고 / 數聲嬌笑落煙空

나긋나긋 고운 손길 원앙줄 사뿐 잡아 / 指柔易著䲶鴦索

날씬한 가는 허리 한들바람 못이길 듯 / 腰細不堪楊柳風

아차! 구름결 머리에서 금비녀 떨어지네 / 誤落雲鬟金鳳釵

저 총각 주워들고 싱글벙글 뽐낸다네 / 游郞拾取笑相誇

그 처자 수줍어 가만히 묻는 말 “도련님 어디 사시나요?” / 含羞暗問郞居住

“수양버들 늘어진 몇 번째 집이라오” / 綠柳珠簾第幾家


간혹 ‘암흑의 시대’라고 하는 저 중세의 연애는 어떠했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물론 ‘남녀칠세부동석’이니 하는 ‘반인륜적인(?)’ 말씀은 역시 교과서의 훈계일 뿐, 일상의 삶에서 연애는 그야말로 ‘일용할 양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세상일 리 없다.


임제의 ‘그네 타는 노래’라는 제목의 이 시 「추천곡(鞦韆曲)」을 보면, 요즘 못지않은 ‘연애질’이 16세기에도 엄존했음을 알 수 있다. 관심을 끌려고 온갖 멋이란 멋은 다 내고, 더 멋진 짝을 만나려 신경전을 벌이며, 아닌 척 재빠른 눈동자는 님을 찾아 분주하면서도 관심 없는 듯 천진난만 웃어제끼고, 결정적으로 ‘호박씨’도 까본다. 이 아이들, 곧 섹스에 돌입할지도 모른다. 수작을 나누는 청춘 남녀의 뜨거운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16세기, 그러니까 지금부터 400여 년 전에 이런 시를 지었다는 것은 대단한 내공이 아니면 곤란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연애시는 단지 연애의 노래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로망스야말로 혁명적인 장르라는 말이 허언은 아닌 것이다. 임제는 세상과의 불화를 자유로운 연애를 상상하며 대면하였다. 도덕이니 윤리니 충효니 하는 것들은 다 실력 없고 시큼한 모리배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그저 달콤하고 간지러운 연애의 숨결을 느끼고자 하였다.


말하자면 임제에게 연애는 불화한 시대에 저항하는 무기이자,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게 하는 나침반이었다. 임제의 연애가 얼마나 성공했는지의 여부는 그리 중요치 않다. 속물들의 위선과 무자비한 권력이 횡횡하는 시대에 ‘산만하고도 경쾌한 아이’인 스키조-키드로서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그야말로 온몸으로 밀고 나간 그의 발자취 자체가 의미 있다.


‘광분’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이 한갓된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그 허무주의를 살짝 걷어낸 ‘카르포 디엠’으로서의 연애밖에 없을 것이다. “오르가즘 능력이 없는 자들이 발명한 것이 바로 파시즘”이라고 한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1897∼1957)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배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