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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o Aug 22. 2024

방청소

 내가 벌레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밀어 두고 밀어둔 방 청소를 근 한 달 만에 하려고 할 때 방에 질서 없이 어질러진 서류 틈 사이로 오물들을 발견하는 순간이 그런 순간들이었다. 그 오물은 엉키고 뒤섞여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빛에 따라 초록빛이 감도는 군청색 덩어리가 되어 고약한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이런 존재와 내가 동침하고 그에 대해 어떤 위화감도 느끼지 못한 채 술에 취해 들떠 방방거렸었다는 사실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나를 조금 더 익숙하게 생각하게 하지만 타인의 눈에 벌레의 삶처럼 보일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준다. 어쩌면 나는 너무 불안해져 버려서 거기로 안착해 버리는 걸 조금 더 선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다리의 털이 조금 더 두껍게 길어지고 머리가 기르고 길러 길게 뻗은 머리카락들로 소통하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감히 집주인이 내 방 문 앞에 월세를 독촉하는 편지를 남기거나 가정부가 내 방을 청소하겠답시고 방을 두드리거나 하는 짓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나와 비슷한 탈의 인간의 눈들은 기형적으로 나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차라리 나는 다른 형태로 탈피해서 문 틀 구석에 내가 키우는 거미와 더 유대감을 쌓았으면 한다. 인생이 구라고 할 때 모든 면에서 중심을 통과한다면 같은 길이의 선을 그을 수 있다. 아마 그곳에 정확히 겹치는 선은 단 하나도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래서 내가 벌레로 변신하든 환생하든 간에 나의 특이성은 그다지 대범하고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며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나의 짝짝이 양말이나 삐쭉 선 뒷머리나 땅에 떨어진 담배를 주워 아무렇지 않게 다시 피는 모습들로 하여금 나를 벌레라고 인식하고 있을지 모른다. 피크닉을 떠났던 어느 화창한 날 오후에 돗자리 위에 앉아 열심히 여자 아이들을 웃겨주는 나의 모습엔 그 돗자리를 탄 채 여행을 떠나는 작은 거미와 어떤 유사성이 있었다. 여자 아이들은 질색을 하며 털어버렸지만 우리 사이 오갔던 농담과 웃음의 무게는 그만큼이나 가련한 것들이었다. 기껏해야 방 청소나 마친 뒤에 우는 소리를 해서 미안하지만 이제 내 방에 오물의 흔적은 없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었다. 집주인 할머니의 편지를 방 문 앞에서 발견한 어느 기분 좋았던 날 아침 거대한 벌레처럼 이불과 베개 속을 파고들었던 기억 또한 오물과 함께 쓸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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