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말한다. 그러니 살아 있을 때만 잘 살면 되지, 죽은 뒤에 다른 사람들의 평가 따위에 신경 쓸 일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나는 하나의 자아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내 안에 있는 ‘나’가 있고, 다른 사람들 속에 있는 ‘나’가 있다. 사회심리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는 이를 I와 Me로 구분했다. I는 나 스스로를 느끼고 판단하는 주관적 자기이고, Me는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객관적 자기이다. 죽음과 함께 I는 사라지지만, Me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 있다. 내가 남긴 빛과 그림자가 클수록, 그 잔상은 오래 남는다.
Me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과 평가는 가족, 친척, 친구, 지인들에게로 마치 연좌제처럼 이어진다. 좋은 평판은 남겨진 이들에게 자부심과 명예가 되지만, 나쁜 평판은 모욕과 수치심이 된다. 이래도 “죽으면 다 끝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대 로마에는 “Vita brevis, fama longa”라는 말이 있다. 삶은 짧고, 명성은 길다는 뜻이다. 영어권에서는 “Legacy is what people remember about you”라고 말한다. 유산이란 재산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이라는 의미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우리 속담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문화와 시대는 달라도, 인생에 대한 통찰은 닮아 있다.
우리의 육체는 언젠가 불에 타 연기로 사라지지만, 우리가 남긴 기억은 묘비에 새겨진 이름처럼 비와 바람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어떻게 살았는가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 마음속에서 계속 호출된다. 나 자신으로 살아온 인생이 다른 이들에게 선한 삶으로 기억되고, 남겨진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중한 유산으로 전해질 때, 그 삶은 비로소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죽음과 함께 육체는 사라지지만, 이야기로 계속 살아간다. 그 이야기가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는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