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도사 용화전의 『서유기』 벽화
통도사 용화전의 동서 양쪽 벽에는 『서유기』의 내용을 소재로 한 7편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조선 정조 시기(1798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벽화에는 6개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그림의 편수(7편)와 에피소드(6개)에 차이가 나는 것은 현장스님이 수륙대회를 주관하는 내용이 두 장면으로 나누어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림들은 서벽과 동벽에 나뉘어 그려져 있는데 서벽에는 수륙대회를 주관할 고승을 선발하는 장면(12회, 玄裝秉誠建大會), 당태종의 조정에서 재상 소우蕭瑀가 불법 옹호의 변론을 펼치는 장면(11회, 度孤魂蕭瑀正空門), 요괴에게 잡혀간 현장스님을 찾기 위해 손오공이 삼두육비로 변해 산신과 토지신을 불러내는 장면(81회, 黑松林四衆尋師), 스님들을 잡아 죽이는 멸법국(滅法國)에서 손오공이 도술을 부려 국왕과 대신들의 머리를 깎아 국왕을 회개시키는 장면(84회, 難滅加持圓大覺)이 그려져 있고, 동쪽 벽에는 현장스님이 수륙대회를 주관하는 장면(12회, 玄裝秉誠建大會), 손오공이 가뭄으로 고통을 겪는 봉선군(鳳仙郡)을 위해 천상으로 올라가 옥황상제를 만나는 장면(87회, 鳳仙郡冒天止雨), 천축국에서 현장법사와 결혼하려는 옥토끼 요괴를 물리치고 행방불명된 공주를 찾아주는 장면(一怪空懷情慾喜)이 그려져 있다.
궁금하지 않은가? 왜 하필 『서유기』이고, 또 왜 그 『서유기』의 하고많은 얘기들 중에서 이들 에피소드인가? 그것은 각각의 스토리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일이지만 그전에 먼저 하나의 공통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이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이상 실현에 불교가 절대적인 공헌을 하는 종교임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벽화들이 미륵불을 주존으로 모시는 용화전에 그려진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용화전은 미륵신앙의 전당이다. 말법시대가 되면 미륵불이 출현하여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세상과 중생을 구원한다는 것이 미륵신앙의 핵심이다. 요컨대 이 벽화가 그려진 조선 후기 불교계가 꿈꾸었던 미륵세상은 불교를 존중하는 정치가 행해지는 국가였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국왕들이 모두 진짜 천자(眞天子), 혹은 성군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삿된 요괴를 물리침으로써 서천여행의 길을 바로잡는다는 『서유기』의 스토리 패턴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국왕을 요괴, 혹은 악인으로 설정하지 않은 에피소드들을 선택한 이유 또한 명확하다. 조선은 강력한 억불정책을 시행한 왕조였다. 그 절대권력 하에서 국왕을 요괴나 악인으로 묘사한 이야기를 선양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오로지 본래 성군인 국왕이 눈을 바로 떠 억불정책을 철회함으로써 불교와 유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 그리하여 태평성대의 구현에 각자가 그 마땅한 역할을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기탁한 것이 이들 그림인 것이다.
이 정도로 『서유기』 벽화제작의 의도를 살펴보고 구체적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 한다. 『서유기』는 현란할 정도의 비유와 상징을 통해 불교의 깊은 교리를 표현하고 있는 일종의 ‘비유경’에 해당한다. 그 깊은 가르침을 모두 알아들으려면 지겨울 정도의 자세한 음미가 필요한 이유이다. 여기에서는 그 대강의 주제를 확인하는 수준으로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스님 1만 명을 죽이기로 한 멸법국 이야기.(서벽 제1도, 難滅加持圓大覺)다. 손오공이 국왕과 왕후비빈, 그리고 조정 백관들의 머리를 모두 깎아 스님을 죽이는 정책을 철회하도록 한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멸법국-1만 명의 스님을 죽이기로 한 나라
삼장 일행은 멸법국이라는 나라에 도착한다. 이곳은 1만 명의 스님을 죽일 것을 맹세한 국왕이 통치하는 나라로서 이미 9,996명을 죽이고 나머지 4명을 마저 죽여 숫자를 채우려고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다. 삼장 일행은 속인으로 변장한 뒤 도성에 들어가 여관에 투숙한다. 그런데 잠결에 부주의하여 신분을 들키게 될까 걱정하여 큰 궤짝을 빌려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자기로 한다.
1만 명의 승려를 죽이기로 맹세하여 9,996명을 죽이고 나머지 4명이 남은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에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이렇게 4명이 안성맞춤으로 나타난 것이다. 왜 이 나라의 국왕은 승려를 죽이겠다는 맹세를 한 것일까? 이야기 속에서는 어떤 비구가 국왕을 모욕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모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런데 전체 이야기를 보면 그것이 모든 차별적 모양은 결국 평등한 본성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공(空)의 도리에 대한 설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국왕은 고귀한 자신과 비천한 백성들이 본성적으로는 평등하다는 법사의 설법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국왕의 분노를 야기한 것을 보면 방편이 뛰어난 스님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는 차별적 현상을 부정하고 평등한 본성만을 고집하는(頑空) 원리주의적 스님이었을 수 있다. 이것은 전체 이야기로 확인될 것이지만 그전에 승려 1만 명을 죽이기로 한 끔찍한 맹세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국왕의 형상은 1천 명을 죽이기로 하고 실천에 들어갔던 앙굴마라의 살인 행각을 원형으로 한다. 불경에 기록된 바, 앙굴마라는 못된 바라문 스승의 권유에 따라 1천 명을 죽여 천상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며 그 실천에 들어간다. 이후 그는 만나는 사람들을 죽여 그 손가락을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 다닌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앙굴마라라고 불렀다. 앙굴마라는 ‘손가락 목걸이(指鬘)를 하고 다니는 자’라는 뜻이다. 그는 999명을 죽인 뒤 마지막 1명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부처님을 만난다. 당시 마지막으로 죽이려 한 1명이 그 어머니였는데 부처님이 나타나 가르침을 베풀어 그를 깨달음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대승경전에서는 이러한 앙굴마라의 생애를 해석하여 무수한 악행에도 불구하고 여래로서의 내적인 본성(여래장)은 변함이 없다는 점, 기왕의 죄를 참회하고 여래로서의 본성을 발휘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1만 명의 승려를 죽이기로 한 멸법국의 국왕도 앙굴마라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스스로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내려놓고 평등한 여래의 본성에 귀의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차별적 현상과 평등한 본성의 불이성을 보여주기 위한 비유와 상징의 연속된 고리에 해당한다. 일체의 모양이 사라지는 어둠(본성)과 모든 모양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밝음(현상), 삭발한 머리(평등)와 풍성한 머리칼이 있는 머리(차별), 궤짝의 안(무분별)과 궤짝의 밖(분별) 등의 상의적 관계를 드러냄으로써 중도를 증명하는 설법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알려면 다음의 얘기를 들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