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생활이 끝나간다
*자기 비하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읽는 분들을 향한 게 아니니 읽고 바로 넘어가주세요.
삼수 생활의 마침표가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 수능을 보고, 가채점 상담을 하고, 논술시험도 치르고 있다.
하나씩 남은 일을 해치우고 나면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계획도 한다.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얼마 남지 않은 하루에서 혼자 책상에 앉아 있으면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과 그동안 생각만 해왔던 꿈을 펼치고 싶은 욕망이 키보드를 켜게 한다.
사실 가만히 있으면 아직 다 끝난 게 아닌 이 시점이 주는 불안함이 나를 떨게 만든다. 몰입할 게 필요했다.
2023년은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했다. 내가 쓰고도 이질적이지만 행복이 마냥 웃기만 하는 그런 게 아닌 것 같더라
‘나도 나로 살아갈 수 있겠구나’하는 어떤 안정감을 선물 받았다. 그리고 그 안정감은 고통으로부터 기인한다.
사실 이미 지난 과거의 아픔을 끄집어 내 상기시키고 심지어 내 손으로 타자까지 쳐가며 글로 시각화하는 일은 꽤나 고역이다. 머릿속으로 회상하는 일은 수도 없이 해왔지만 글은 다르다. 지금도 머리가 아파온다. 그럼에도 쓰고 싶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이 글의 마침표를 언젠가의 내가 다시 봤을 때 진심으로 고생했다고 인정해 주고 다독여주길 바라는 마음이 오랫동안 눅눅하게 겹겹이 쌓여있다. 이제는 말릴 때가 되지 않았나
난 왜 나를 다정하게 대하지 못했을까.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건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든 숨만 붙이고 있으면 인간의 본능은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길이 있는 쪽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믿고 싶다.
사실 이번에 가채점을 하고 났을 때 고등학교 1학년 첫 내신 성적표를 받았을 때의 기분을 다시 느꼈던 것 같다.
무감각
정도는 덜했지만 어떠한 분노도 의문도 슬픔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약간 답답하고 억울하긴 했지만
‘난 체념이 빠른 편인가’ 생각하고 말았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지원 가능한 대학 라인을 듣고 계단을 내려오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밀려왔다.
곧바로 왼손에 들고 있던 폰을 집어던졌다. 이걸로는 내 화가 풀리기에 택도 없었다.
같이 온 친구에게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서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던진 건데 친구가 봤다. 쪽팔렸다.
1층에 담배 피우러 가기로 했는데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불안했다.
‘난폭한 모습 보고 실망한 건가? 이런 어색함 너무 싫은데’
친구는 먼저 내려가 있었다.
담배 피우면서 친구랑 상담 얘기하다 반도 안 핀 담배를 집어던졌고 이런 모습을 보여준 게 곧바로 또 후회되고 민망했다.
옆에서 욕하며 우는 나를 보더니 친구는 자리를 떴다.
‘이런 내가 보기 싫었나 짜증 나겠지 이제 친구 한 명 멀어지는 건가’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이랑 페트병 소주를 사들고 왔다. 처음엔 생수인 줄 알았는데 소주인걸 보자마자 둘 다 미친 듯이 웃었다.
목표대학과 결과가 비슷했던 우리 둘은 번갈아가며 화내고 위로해 줬다.
우리는 학원 건물 1층 흡연 구역에서 소리 지르며 울었다. 밖에서, 남들 앞에서 소리 내며 운 건 처음이었다. 집에서도 소리 죽여 우는 나였는데
“내가 많은 거 바랬냐고 그냥 딱 내가 노력한 만큼만 나오길 바랐는데 어떻게 결과가 이래
고등학교 3년에 재수 삼수까지 했는데 결과가 이 거래 쪽팔려서 어떻게 다녀? 돈 줘도 안 가 시발“
“그래, 너 진짜 열심히 했어. 내가 알아. 내가 너랑 왜 친해지고 싶어 했는지 알아? 학원 초 때부터 항상 맨 앞에서 수업 열심히 듣고 공부하는 모습 때문이었어. “
‘주변 친구들 선생님들도 난 분명 잘 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나 노력했는데..’
지나가던 행인들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평소에 남 신경 많이 쓰던 나도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폰을 몇 번이고 집어던지고 울고 나니 조금 진정이 됐다.
“노력이 다 보상받는 건 아닌 것 같아”
“이번에 내가 공부해 보니까 느낀 게 좋은 대학 아니라고 사람 무시하면 안 되겠더라. 시험이 자기 실력 100프로 나온다고 보장할 수도 없고 운도 많이 따르는 것 같아.”
“나도 모의고사는 만점이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4 뜰 것 같아”
“시발 굉장히 허무하다 나 1년 동안 뭐 한 거냐?”
“이 짓 다시는 못 해. 다시 한다 해도 잘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그때 깨달았다. 체념이 아니라 현실 자각이 안 됐던 거구나.
때로는 이런 내 반응이 낯설어 ’난 이 시험에 진심이 아니었던 건가?‘ 스스로 의심한 날도 많았다.
’뭐가 이렇게 덤덤하고 아무렇지 않지‘ 마음에 병이 생긴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수능은 생각보다 훨씬 큰 시험이었고, 수험생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난 계속해서 같은 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던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재수하고, 재수가 끝나고 삼수를 결정하고 바로 시작해서 반복된 일상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힘든 건 당연한 거고 난 힘들어야 하고 고통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잘될 테니까.
하지만 나를 살피기 위해선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걸 재수와 이어진 삼수생활 도중에 깨달았다.
때로는 단호함, 현실자각, 융통성, 이해 이런 것들이 필요했다. 폐쇄적이고 외로운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나에게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고 삼수 때는 수능이라는 장기전에서 이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긴장과 이완의 반복이었다. 재수시절은 그걸 몰라 꾸역꾸역 나를 몰아붙였다. 내가 숨 막혀하는 줄도 모르고. 누가 가르쳐주기야 했으면 내가 덜 힘들었을 텐데 얼굴 없는 타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왜 아무도 나를 돌보는 법은 알려주지 않았는지 원망했다.
고등학교 1학년 처음 겪는 분노와 좌절에 내 감정을 통제할 줄 몰라 나를 함부로 대했었다. 욕심만 많고 움직이지도 않고 살만 찌는 내가 싫었고, 그래서 내일이 안 왔음 싶었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냥 내가 나를 버렸었다. 포기하면 편할 텐데 그러기엔 갖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걸 포기할 자신도 없었다.가족, 친구, 꿈,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한 결과는 당연히 처참했다.
나조차 나를 포기하는데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나를 환영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잘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생각에 어떻게든 하루를 버틴 것 같다. 그런 내 마음을 파악하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하루는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시늉만 내는 내가 역겹기도 했다. ‘정말 고통스러웠으면 지금쯤 구급차에 실려가고 있었을 텐데 너 못하잖아. 너 진짜 힘든 것도 아니면서 조금 버겁다고 징징대지 좀 마. 공부라도 하면서 징징대던가. 남들 다 하는데 이거 하나 못해놓고 도망가고 싶어?’
이런 자기 비난이 너무나도 익숙하고 편하고 당연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미숙함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 건. 이런 철없는 반항이 너무나 한심했고, 그렇다고 이걸 이겨내기엔 너무나 약했다. 간단한 것조차 버거워하는 내가 더 싫었고 어쩌다 내가 맘에 드는 날이면 낯섦에 대한 두려움에 차라리 날 싫어하는 쪽으로 빨리 방향을 바꿔버렸다.
이런 짐을 안은 채로 들어간 삼수 생활은 조금 달랐다. 재수 생활이 끝나고 11월부터 2월까지 3개월 동안 휴식을 가진 게 큰 도움이 됐다. 시간이 약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사실 그 시간 동안 특별히 한 건 없었다. 잠 푹 자고, 씻고, 사람 만나고, 알바도 하고 평범한 수능 끝난 수험생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다시 시작한 수험 생활은 에너지를 가득으로 충전한 상태였다. 덕분에 미친 듯이 했고 주변에서도 말렸다. 그러다 번아웃 온다고 쉬어가면서 하라고 잠 좀 자라고.
그렇지만 돌아온 내 대답은 “몸은 지쳐도 마음은 안 지쳐요”였다.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서도 어딘가 잘난 척하는 듯한 이질감에 민망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나도 어지간히 나에게 인정받고 싶었구나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이어져온 자기 비하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전보다는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지만 어딘가 비어있는 기분.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수험생활은 힘드니까. 스스로를 버렸던 내가 이런 말을 듣는 게 뿌듯하다는 걸 느낄 새도 없이 바쁘게 보냈다. 난 욕심도 많고,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 엄격한 기준치와 잣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3개월은 4시간 동안 자가며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아침운동을 하고, 씻고, 학원 셔틀버스를 타기 전까지 집에서 1시간 조금 넘게 공부를 하다 셔틀버스를 타면 다른 애들 핸드폰 볼 때 인강 보고, 외우고, 노트를 보고 몇 번이나 봤다.
너무 졸린 날엔 불편한 셔틀버스에서 잠깐 눈 붙이는 순간조차도 죄책감이 들었다. ‘작년에도 남들만큼 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럴 시간이 있나?’
한 번은 수업 시간에 존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맨 앞에 앉아놓고 조는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고 교실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도 몇 번 반복되니 ‘졸 수 있어. 빨리 돌아오면 돼’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도 잠을 늘려야 한다는 건 용납할 수가 없었다. 또 그 짧은 찰나조차 스스로를 비난하는 감정을 쓰는 게 너무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었다. 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저것뿐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 이런 사소한 것에도 흔들리는 내 모습과, 내 고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담임선생님의 태도가 날 안정시켜 줬다. 평소에 담임선생님과 대화를 자주 나누는 편이었는데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자주 해주셨다. 시험을 망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망쳐보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세상은 그대로 돌아갔었다. 이 기억 덕분에 내 뇌 속에도 오차를 허용하는 범위가 넓어진 걸까?
잠을 참아가며 수업을 듣다 보면 잠은 오고 필기는 해야 하는 충동하는 두 욕구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내 모습이 꽤나 흥미롭다.몬스터 두 캔에 허벅지를 찔러도 잠이 안 깰 정도로 피곤하니 글씨체는 휴먼졸림체고 와중에 필기는 똑바로 하고 싶어서 교재는 화이트로 몇 번이고 지우고 덧쓴 자국이 선명하다. 순간 조느라 놓친 선생님 말씀은 분명 들은 기억이 없는데 필기는 깔끔하게 잘 돼있고 수업을 다시 들으면 이상하리만치 기억이 나는 것이었다. 처음 느껴본 낯설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3개월 정도 이 생활을 하다 보니 뭔가 잘못된 게 느껴졌다. 책을 보는데 집중이 안 되고, 봤던 부분을 몇 번이고 다시 봤는데도 불구하고 기억이 안 나는 것이었다. 눈을 떠도 정신이 멍했고 커피를 마시면 마실 수록 잠이 왔고, 쉬는 시간에 잠깐 쪽잠을 자면 종소리가 들리지 않아 선생님이 깨워줘야 일어날 수 있었다. 그 마저도 일어나기 힘들까 봐 자습실에서는 한 번도 엎드리지 않고 책상 옆 사물함에 기대서 잤다. (이것도 나중이 되니 어깨가 아파서 결국엔 엎드리게 됐지만)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1분 1초가 아까운데 나는 복습만 해도 하루가 다 가니 문제를 많이 풀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시험 점수는 떨어진 적이 없었다. 오히려 오르막길이었다. 그래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런 치열하고 열정적인 내 모습을 보니 ‘이게 원래 내 자리지’ 싶었다. 원하던 살도 자연스레 빠졌다. 제일 무거웠던 고3시절보다 7, 8킬로는 줄었다. 다들 원하는 목표를 이루려면 이 정도 희생은 해야 한다고 말하니까. 여기서 뭔가 변화를 주면 내가 낙오자, 도망자가 된 것 같았다. 이것도 못 버티는 약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나에게 주는 비난이 두려웠고 그래서 더더욱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험생이 감히 휴식을 취하면 안될 것 같았다. 오랜 기간 쌓여온 불안이 나를 휴식의 필요성도 모르는 무식한 애로 만들어버렸다.
“잠을 자”
선생님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수면 시간을 늘리고 다시 한 공부는 달랐다. 물론 4시간씩 자고 수업을 하루종일 듣고도 일주일 동안 자습 100시간을 확보해 간 건 비교적 난이도가 쉬운 초반 내용의 공부라 가능했었을지도 모른다. 초반에 떨어지지 않던 시험성적도 초반이라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게 뭔가 내가 생각하던 수험생의 모습이었다. 샤워할 때조차도 한국사 인강을 볼륨 최대로 키워가며 공부했으니까 가능한 시간이었다. 학원에서도 자습시간은 내가 제일 높다는 사실이 날 이끌었다. 행여 물소리에 못 들은 건 자기 전까지 반복해 가며 들었고 내 방은 공부 내용을 적어놓은 포스트잇이 점점 많아졌다. 다른 벽면은 아침 기상 시간, 하원 후 운동 여부, 샤워 여부, 아침 자습 시간 확보, 수업시간엔 안 졸았는지 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확인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들로 채워졌다. 학원에서는 밥 먹는 시간조차 여유를 가질 수가 없었다. 학원이 정해준 식사 시간은 하루 두 번, 70분씩이었는데 난 밥 먹고 양치하는 모든 걸 20분 안에 끝내야 했다. 억지로 한 건 없었다. 밥이 맛없는 것도 아닌데 5분만 먹어도 배가 차고 몬스터도 두 잔씩 먹어야 버틸 수 있었다. 그때부터 위장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 것 같다.
잠은 5시간, 6시간, 7시간씩 자보며 나에게 맞는 수면시간을 찾아냈다. 7시간은 너무 개운해 텐션이 높아져 공부에 방해가 됐고, 5시간은 너무 피곤했고, 그 사이의 6시간은 딱 적당했다. 피곤하지만 커피 마시면 버틸 수 있는 정도. 나에게 맞는 수면 시간을 찾고 나니 그래도 3개월이면 잘 버티지 않았나? 하는 약간의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4시간씩 자던 시절에는 뇌가 돌아갈 힘이 없어 생각도 안 하고 공부를 하다 보니 같은 실수가 반복됐었다. 틀렸던 문제를 같은 이유로 또 틀리고또 틀리고. 정말 내 지능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엄마는 분명 나에게 ‘넌 하는 만큼만 나오니까 1등 안 바랄게 네 실력대로만 해’ 이랬는데 나 지금 왜 이러나 싶었다. 공부는 단순히 문제만 많이 푼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그건 점수가 많이 낮을 때의 얘기고 어느 정도 기본기가 받쳐준 채 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공부’가 필요했다. 난 그게 부족했다. 그냥 많이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잠을 늘리고 나니 깨달았다. 난 수면이 엄청 중요한 사람이구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개운함, 머리에서 느껴지는 맑은 정신이 확연히 달랐다. 물론 그간 쌓여온 피로는 하루 푹 잔다고 해결되지 않았다. 그날 하루종일 학원 생활을 하면 또 집으로 들고 오는 그날의 피로가 있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슬펐다. 수면이 내 공부에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깨달은 날에는 집에 가는 버스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잠을 줄여가면서 하고 싶은데 난 그러질 못하는 체질이구나 ‘
‘안 되는구나’
내가 나에게 미안했다. ‘운동을 열심히 해놨으면.. 뭔가 달랐을까? 그나마 3개월 푹 쉬어서 달릴 수 있던 건데..’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듯 나에게 맞는 공부법이 있다는 걸 그제야 몸소 깨달았다. 그래서 공부법에는 정답이 없다. 이걸 깨달은 후에는 인스타나 유튜브에 @@공부법 이런 영상이 떠도 초조해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애써 ’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방법이 있다는 거네. 그래도 애쓴 덕분에 알게 됐으니 좀비로 공부해서 시간 버릴 바엔 좀 더 밀도 있게 공부하는 게 낫지 ‘라며 나를 다독여나갔다. 신체적인 여유가 정신적인 여유로 이어져 혹여나 내가 긴장감이 사라질까 불안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그럴 때마다 ’ 난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야. 어떻게 항상 잘해. 꾸준히 하는 게 답이야‘라고 최대한 감정적인 동요를 줄여나가려 애썼다.
그마저도 피곤하고 벅찬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에 대해 하나둘씩 알아나갔다. 재수할 땐 이런 시행착오를 겪어야 나를 알 수 있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싫었다. 다 귀찮고 하기 싫고 아무것도 귀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올해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숨 막히는 쳇바퀴 같은 일상이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줬다. 덕분에 시행착오를 겪어도 전보다는 덜 두려웠고, 틀려도 괜찮다는 걸 알 수 있게 됐다. 그동안에는 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완벽해야 했다. 난 잘해왔으니까 잘했으니까. 나의 이런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주변 환경 탓이 클까, 내 선천적인 성향 때문인 걸까. 무엇이 나를 그 어떠한 것도 놓고 싶어 하지 않는 욕심쟁이로 만들었을까. 좀 더 어른이 되면 그것도 깨달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경험은 나를 수업 때 어쩌다 졸아도 바로 일어서서 뒤로 나가면 되고, 졸릴 땐 잠을 자도 되고, 아프면 쉬어도 되고, 수험생이어도 쉬어도 되고, 틀린 건 다시 반복 안 하게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되고 하는 사고방식을 심어주었다. 전보다 한결 마음이 편했다. 학원에서 치르는 모의고사 결과가 아쉬워도 크게 연연하지 않고 원인분석을 하려 애썼다. 할 게 많아서 그런 감정도 사치인 시기였다. 그래도 사람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학원에서 사귄 많은 친구들 덕분에 그나마 학원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 부분이 고맙다.
“좀 놓고 살아도 돼”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건넨 친구의 다정한 말에 감동받았던 날이 있다. 나를 안쓰러워하는 말투가 따뜻했고, 내가 다 쥐려 한다는 걸 자각했다. 너무 힘든 날에는 몇 달에 한 번씩 하루를 통으로 그냥 쉬어주기도 했고, 계획한 만큼 다 못 끝냈을 때는 내일 마저 하면 돼했다. 나를 계속 공부시키기 위해 채찍질보단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 애썼다. ‘오늘은 수학 푸는데 생각보다 많이 걸렸네. 내일 수학 시간 줄이고 못한 국어 더 해야겠다 ‘ 이런 식으로 계획표도 융통성 있게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채찍질도 당근이 있어야 채찍이 되는 거니까. 당근 없는 채찍은 그냥 학대 아닌가. 아는 문제를 틀려도 ‘이게 내 문제점이니까 고치면 돼, 올라갈 일만 남았어’ 하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내가 나에게 주는 긍정적인 말은 꽤나 힘이 컸다. 아무 생각 없이 등원할 수 있게 해 줬고, 가기 싫어도 그냥 당연하게 발은 학원을 향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걸 결코 나 혼자 할 순 없었다. 담임선생님과 과목 선생님, 친구들, 가족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객관적인 상황 판단, 정서적인 위로를 해주는 선생님과 아무 생각 없이 떠들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때로는 내가 이 지지체들의 존재에 자만해서 정신을 못 차리나 싶을 정도로 과분하리만큼 많은 응원을 받으며 수험생활을 보냈다.
공부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이유는 학벌만큼 그 과정에서 얻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내가 앞으로 나로 살아가는 태도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실수했으니 포기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결할지,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건 무엇인지 통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늘 내가 좀 맘에 안 들어도 내일이 있으니까 다시 해보면 되지 않을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그런 생각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면 중요도를 세우고 하나씩 차근히 하면 된다. 전에는 도망치기 일쑤였던 나였다. 이런 눈에 띄는 변화가 나에게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그래서 결과만 보는 차가운 현실에서 나만큼은 나의 과정에 주목하고 토닥여주고 싶었다. 이 글을 쓴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아직 결과도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잘했다고는 할 수 없다. 어찌 됐던 점수는 중요하고 난 상위권 대학을 가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내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서툴고 미숙하고 어리지만 작년과의 나와는 분명히 다르고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내가 나아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대학은 조금 낮을지언정 꿈이 있고 그게 다가 아니니까. 이 글은 단지 1년 뒤 혹은 몇 년 뒤의 내가 이때의 나를 잊지 말고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수학 문제를 매일 같은 양 11월까지 꾸준히 해 온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지 라는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너무 힘들어도 휴지로 눈물 닦으며 좀만 더 버티자 공부하던 내 모습은 나도 간절하면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시켜 줬고
위장이 약해져 며칠 연속으로 토를 해도 입 닦고 하던 공부하던 나는 아픈 건 슬프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줬다.
앞으로도 내가 나를 예뻐하고 인정해 주는 길은 끝나지 않았다. 가까워졌다 싶다가도 문득 멀어질 테고 예상치 못하게 한 걸음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난 내일을 살아가야 하니까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데 좀 더 자긍심을 가지고 열심히 예뻐해 줬으면 좋겠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수험생활도 지나고 보면 분명 그때보다 별거 아닌 일이 될 것이다. 내 고등학교 시절이 그랬듯이. 과거는 미화되고 또 잊히니까. 그래도 버티고애써준 나 덕분에 내 삼수생활을 고통스럽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이 경험을 살릴지 말지는 앞으로의 나에게 달렸다.
여전히 걱정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살아가보고 싶다. 언제가 또 나에게 닥칠지 모르는 힘든 일을 이때를 상기시키며 잘 이겨내보고 싶다.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