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존중일까? 미안함에 나온 말일까?
잘할게라는 말
‘잘할게’라는 말은
어느 누구에게도 부담이 큰 문장인 것 같다.
잘한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잘하려는 기준도 다르고,
그 기준이 무엇인지
서로 정확히 알기도 어렵다.
그래서인지
‘잘할게’라는 말에는
어딘가 모호함이 남는다.
무엇을,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해야
잘하는 걸까.
때로는
그 말 안에
무지함이 숨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잘할게’라는 말보다
‘서로 존중하며 행복하게 살자’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은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더 분명해졌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잘하겠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며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건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불편하지 않게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먼저 배려하고,
이건 좋아하실까,
이건 불편하실까를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그런 태도가
잘하려는 노력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잘함’이라 부르기보다는
‘존중’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가끔
‘잘할게’라는 말이
여러 의미를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배려와 존중이 함께 담긴 말일까,
아니면
미안한 마음에
당장 해줄 말이 없어
급하게 꺼내든 말일까.
나는 그 말에
기대고 싶지 않았다.
그저
서로 아프지 않고,
서로 상처 주지 않고,
가능하다면
조금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을 한 사람이
그 말 때문에
부담을 안고 살지 않았으면 한다.
나 역시
그런 부담을
내 삶에 더 얹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