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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Mar 03. 2022

원래 인생은 비극이야

“아프다며? 어쩌다가....”

회사 생활을 돌이켜볼 때 꺼내기 싫은 기억들이 있다면 단연코 내가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때였다. 멘탈갑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 패기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빠지게 되는 매너리즘과 내가 있던 조직에서 배울 게 없다는 절망감, 그러면서도 이제는 가장으로서 일을 그만둬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까지 겹쳐 앞으로 내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들 때문에 내 우울감은 하루아침에 몰려왔다. 어쩌면 그 우울감들은 오랫동안 소심한 노크들로 나를 두드렸을 수 있다.  

 공황장애나 우울증의 자세한 증상들은 연예인들의 안타까운 소식들을 한 번씩 보면서 익숙해진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철이 없던 시절만 하더라도 ‘정신적 스트레스로 사람이 저럴 수 있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짓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증이 얼마나 무서운 질병인지 깨닫고 있다. 여전히 누군가는 멘탈 약한 사람들의 뻔한 변명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업무에도 지장을 끼치자 나는 윗선에게 갑작스러운 면담을 요청했고, 그동안 숨겨왔던 얘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위로의 말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고, 단순히 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음에 따른 책임감 하나였다.

 “요새 무슨 이유인지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정신과 다니고 있습니다. 업무 집중이 잘 안 되네요.” 갑작스러운 면담 요청에 당황한 표정이었고, 내 말을 듣고 나서는 더 당황한 표정이었다.

 “언제부터 그런겨? 일이 힘들어서 그런 거 아니야?”

 “일이 힘든 것보다는 이제 일이 재미없네요. 억지로 계속해야 한다는 느낌 때문인지, 원래 이때쯤 한 번씩 그러잖아요. 한 석 달 됐어요.” 원래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윗선들에게도 참 한결같이 건방졌던 것 같다.

 “그렇지. 그런 시기가 한 번씩 오지. 그러면 어떡할래? 좀 쉴래?”

 “네. 아. 그리고 이 얘기는 밖에서 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니 비밀로 해주셨으면 해요.”  

 그동안 쓰지 않았던 연차를 일주일간 몰아 쓰고 생각을 정리할 겸 제주도에 다녀왔다. 정신과에서는 소견서를 써줄 테니 하루라도 빨리 일을 그만두라고 재촉했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이 모든 상황들은 아내에게도 비밀이었다. 괜한 걱정을 할 게 분명하니.

 일주일이라는 기간은 뭐 좀 하려고 하면 끝나버리는 시간이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회사에 출근했지만,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바라보는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데스크 회의에 들어가 윗선들이 자리를 비우자 선배들은 한 명씩 내게 다가와 “그동안 힘들었지?”, “네가 왜?”, “다들 그렇게 성장하는 거야.”, “요즘 그런 거 없는 사람 없어.” 등등 진심 어린 위로였겠지만, 내가 원하던 그림은 아니었다.

 이 얘기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전파를 살펴보면 윗선은 ‘그래도 팀장은 알아놔야지’, 팀장은 ‘그래도 같은 부서원들은 알아놔야지’, 부서원들은 ‘그래도 선배들은 알아놔야지’... 아주 다양한 경로로 내 증상들이 퍼져나갔다. 그 와중에 더 나아가 내 증상에 대한 원인까지도 추측들이 난무했는데, 이런 상황들이 제일 불편한 건 아마 내 사수였나 보다.

 “이제 괜찮나 보다?” 사수가 어떤 말을 할지 몰랐지만, 재수 없는 말이 될 것이라는 직감은 있었다.

 “네.”

 “야. 그렇게 며칠 쉬면 나아질 거를 다음부터는 좀 참아봐.”

 ‘왜요. 당신이 후배들 쥐 잡듯이 잡는다고 소문 퍼져서 불편한가 보죠? 직전에 있던 다른 선배도 그렇게 나갔잖아요.’ 몇 시간 동안 퍼붓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꾹 참아야 했다. 이럴 때 터지면 아마 돌이키지 못할 사태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사람이 나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같은 행동을 보인다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사회는 가끔 위로를 해주기도 하지만, 내 생각대로 배려를 바라면 되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 언제부터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됐었다고.  

 딱 이날이었다. 오전에 먹은 약이 부족해 점심, 저녁 약까지 몰아 삼킨 후 다시 업무에 집중하려던 차,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내가 입사하자마자 처음으로 만났던 타사 선배의 부고 문자였다. 같이 치열한 경쟁을 하기도 하고, 내가 잘 따른 선배이기도 했다. 문자를 수십 차례 다시 확인해야 했다. ‘선배의 가족상이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때부터는 몇 차례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대부분 “이거 진짜야?”라는 말들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의 나이 서른여덟. 사인은 과로사. 장례식장에는 선배의 7살짜리 아들이 엄마의 무릎을 베고 자고 있었고, 형수는 여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지 않아 보였다. 평생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나조차도 얼마 전 선배와 안부 인사를 나누던 게 생생했다.  

 집에 와서는 그가 좋아했던 두부두루치기와 술을 준비해놓고 혼자 멍하니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왜 인생은 나이 먹을수록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많은 것 같지?’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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