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를 선택하다 / 주전공과 부전공의 의미 / 끝나지 않은 물음
수동적으로 정해진 수업을 듣는 학교가 진짜 내가 생각해온 대학이 맞을까?
대학교가 다른 교육과정보다 더 특별한 이유는 학교가 제공하는 공부 재료들을 골라서 내가 직접 요리해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중전공 만큼은 내가 생각하던 대학의 의미를 실현시킬 수 있게 해줄, 능동적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해야겠다는 결심과 고민을 품기 시작한다.
이 고민을 하고 있던 시기에 나는 4학기를 마무리하며 2년동안 느껴온 인간관계에 대한 여러가지 고뇌들, 그리고 동시에 군입대를 앞두면서 심리적으로도 혼란기에 놓여있었다. 안팎 으로 혼란스러웠던 나의 정서적 안정감을 찾기 위해 유명하다 싶은 자기계발서 서적은 눈에 보이는 대로 읽었고, 그 책 들에서 나의 마음을 울리던 문장들은 하나같이 인문학을 향해 인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입대해서는 군생활 내내 인문학 서적에 빠져들어 시간을 보냈고, 복학시기가 다가오자 긴 고민도 없이 이중전공을 철학과로 선택하게 된다.
대학원을 독일로 가고싶어서 독일어 통번역학과를 후보에 잠깐 두었지만, 유학이 목적이라면 독일어 문화원이나 강의를 필요할 때 언제든 찾을 수 있고 환경기사 자격증을 따는 것 처럼 언어도 졸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자격증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전공으로 붙잡을 필요성까지는 못 느꼈다.
철학만큼은 학위증을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자격증 처럼 시험을 치뤄 실력을 평가하지 않는 유일한 분야이기에 대학이 아니면 제대로 배울 수 없는 유일한 학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내 선택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사실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그냥 철학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철학을 전공했다는 말 한마디는 그 깊이감이 확실히 다르다 느꼈던 것도 큰 이유였다. 그렇게 3학년 복학해서 들었던 무엇을 공부하니? 라는 물음에 두개의 전공 환경학과와 철학과를 말했다.
why? philosophy.
두가지 전공을 가진 나는 이제 다른 물음에 답해야만 했다. 환경학과와 철학과 두개를 말하면 대다수는 내 주 전공 환경학과 보다는 왜 철학과를 선택했는지 다들 더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복학하자마자 수강한 철학수업들은 기대에 부응하듯 설렘 그 자체였다. 교수님이 전해주는 철학자들의 견해 그리고 토론하며 듣던 철학과 학우들의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견해들은 들을 때 마다 소름이 듣듯 전율이 흐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 일년 동안은 왜 철학이야? 하는 물음에 순수한 어투로 철학을 듣는게 내게 힐링이 되고 즐겁다고 말했다. 그리고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2년간 여러가지 철학수업을 듣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왜 철학이야? 하는 질문에 나름 멋 드러진 이유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어른의 지혜를 얻기 위해 그 세월을 기다리기보다는 지혜를 내가 직접 좇아가 보고 싶어서."
5년을 회상하면서 무엇을 공부하고 왜 선택했는지 학년이 거듭되듯이 그에 맞게 점차 구체화되는 내가 보인다. 하지만 지금 내게 남은 한가지 의문은 무엇을 내 주 전공이고 부전공이라 할 수 있는가? 그 정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내려야 할까? 마음이 움직여서 선택했고, 배우러 가는 등교길까지 설레던 부전공과 내가 살아온 경험에 물 흐르듯 선택하고 계속 흘러가듯 공부하고 있는 본 전공. 둘 사이에 선호도의 차이는 없다. 단지 두가지 학문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다를 뿐이다. 졸업 후에는 환경학과의 길로 대학원을 가려 한다.
지금 나는 본 전공을 한 번 더 선택했지만, 여전히 주 전공에 대한 물음표의 굽은 모양은 느낌표로 쉽게 펴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