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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망 Jun 17. 2022

동생부터 시집을 보낸다고요?

아빠의 배신

"저거(동생) 그대로 놔두면 안된당게. 시집을 보내부러야 쓰것다"


청천벽력이라고 하기엔 약했지만 웃으면서 받아들이기엔 분명 강도가 있는 말이었다. 아빠는  작심한듯 혀까지 끌끌찼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나였다. 연년생이라 고작 1년 차이가 나기는 해도 나는 언니다. 장유유서라는 단어가 괜히 나온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날 두고 동생을 먼저 시집을 보낸다고?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간 나에게 아빠는 내년에는 동생을 결혼시켜야 한다는 "2023 딸 둘 중 하나는 시집론"에 불을 붙였다. 큰아빠보다 본인이 먼저 장가갔다는 실증적 근거를 들먹이면서 말이다

. 내 눈에는 나도 모르게 쌍심지가 옮겨 붙었다. 엄마는 내 눈치를 보다가, "너는 아직 제대로 만나는 사람이 없으니까..."라며 말을 흘렸다.


장유유서. 유교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지만, 어쩔 수 없이 삼강오륜을 설파하신 조상님들 뒤에 숨을 수밖에 없는 판이었다. 멀쩡히 언니가 있는데, 왜 동생부터 가야 해? 내가 먼저 갈 거야. 씩씩. 아빠는 눈치도 없고 진짜 서운한 말만 한다니까. 아빠에게 대차게 결혼할 사람 데려오겠노라 말했지만 솔직히 대안을 제시할 자신은 없었다.


내가 부모님께 섭섭하기 그지없던 근본적인 이유는 당시 연애사업이 죽도록 잘 안 풀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이라는 목적을 위해 일찌감치부터 연애사업을 크게 벌여놓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28세부터 3년 동안 열 손가락이 거듭될 때까지 연애를 했던 이유였다. '썸'도 두 자릿수를 넘어갔다.


그런데 하는 연애마다 모조리 말아먹었다. 의욕이 넘쳤지만 결과는 번진 마스카라 자국과 추억만 가득한 사진첩이었다. 고백건대 내가 하던 인스턴트 같은 연애는 참으로 영양가가 없었다. 나쁘지 않은 외모, 빠지지 않는 사교성이란 무기를 바탕으로 애프터 1회를 받아내는 데는 선수가 됐지만, 어느 순간부터 누굴 만나도 가슴이 설레지 않기 시작했다.


앞에 앉혀놓은 여자가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행동을 하는데 남자라고 흥이 날 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 앞에서 차분하고 똑똑하게 내 연애론을 설파하면 남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30대 후반 남자들은 자기 세계가 너무 강해요. 자기가 확고한 사람과 여자친구라는 존재 양립할 수 있을까요 과연?"이라고 말하는 내게 '선생님'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여자친구와 선생님의 차이는 수성에서 천왕성 사이의 거리 정도일 텐데,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남자가 아닌 이상 연애가 잘되긴 만무했다. 1시간 안에 그 거리를 발생시킨 1차적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짧은 소개팅을 마친 우린 어색함을 뚝뚝 흘리며 서로 90도로 고개를 숙였고, 나는 장문의 카톡으로 '좋은 분이지만 저랑은 안 맞는 거 같다. 좋은 분 만날 거다'라는 온갖 예의 바른 수사를 넣은 카톡으로 소개팅을 종결시켰다.


많이 만나본 여자가 좋은 남자를 고를 줄 알 거라고 생각했다. 내게 타고난 특별한 눈이 없는 이상 다양한 경험이 남자 고르는 기준을 조금 더 세밀하고 온전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었다. 물론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경험이 관계를 진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즈음이었다. 그때쯤, 아빠는 내 뒤통수를 크게 때렸다. 생부터 보낸다는 하나의 언어로.


#이번생은망했다 #내연애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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