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의 장벽

낭만 반도체

2025년 현재, 우리의 삶에 가장 깊고 넓게 스며드는 힘은 ‘AI’다. 하지만 ‘AI’는 번개처럼 갑자기 내리 꽂힌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의 흐름이 한 점으로 모여 만들어 낸 거대한 파도일 것이다. ‘AI’라고 부르는 거대한 파도를 일으킨 씨앗은 트랜지스터다.


존 피어스가 1947년 새롭게 개발된 반도체 증폭기의 본질을 저항(resistor)이 전달된다(transfer)는 의미로 ‘transistor’라고 조어했다. 따라서, ‘트랜지스터’는 입력 전압에 따라 저항이 조절된다는 것을 내포한다.


트랜지스터가 개발되기 전에도, 오디오 볼륨 노브를 손으로 돌리면, 저항체의 접촉점이 이동하면서 저항값이 변화했다. 즉, 아날로그의 감성인 손끝의 미세한 개입으로 저항체의 물성이 바뀌었다. 반면에, 트랜지스터는 입력 전압의 크기로 전자의 밀도를 조절하여, 저항의 크기가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구조다. 이러한 트랜지스터는 전압으로 전자의 게이트를 여닫는 디바이스인 것이다.


쇼클리는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공로로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며, ‘트랜지스터의 아버지’로 불렸다. 그러나 그의 트랜지스터는 복잡한 구조와 과도한 전력 소모로 곧 한계를 드러냈다. 쇼클리는 현대적인 트랜지스터를 만들려고 반복적으로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의 시도를 좌초시켰을까? 가장 큰 난관은 실리콘 웨이퍼에 형성되는 산화막을 심각하게 오염시키는 것이었다. 이 오염원은 바로 인간의 몸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나트륨 이온이었다. 보이지 않는 소금이 오랫동안 반도체 연구자들을 좌절시킨 장벽으로 동작한 것이다.


이 문제점을 극복한 연구자는 다름 아닌 강대원 박사였다. 강대원 박사는 실리콘의 표면 상태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가능한 나트륨 오염을 차단하며, 1960년에 최초로 현대적인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 강대원 박사는 실리콘 표면을 정결하게 만들고, 산화막을 안정적으로 성장시키며, 그 산화막 위에 전압을 인가하여 채널을 형성시켰다. 그 순간, 긴 세월 반도체 연구자들을 좌절시킨 소금의 장벽은 조용히 무너졌다.


트랜지스터는 실리콘 내부에 전자가 흐르는 채널을 여는 디바이스다. 그 채널을 가로막던 것은 바다의 맛을 품은 작은 이온, 나트륨이었다. 보이지 않는 소금의 먼지가 산화막을 오염시키며, 채널의 탄생을 방해했다. 하지만 강대원 박사는 그 얇은 산화막 표면에서 소금의 그림자를 지워냈다. 마침내 전자가 맘껏 달릴 수 있는 트랜지스터라는 꽃을 피워냈다.


나는 한국에서 메모리 관련 반도체 산업이 발달한 지분의 상당 부분은 강대원 박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이 직접 알고 지낸 사람이 성공하면 훨씬 더 강하게 용기를 얻는다. 나는 20대 후반에 변리사 수험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 모교로 돌아가서 4명의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나를 포함해서 멤버 3명은 이듬해 합격에 실패했지만, 1명은 합격했다. 그의 합격은 나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나도 별로 어렵지 않게 합격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가까운 타인의 성공은 먼 하늘의 별빛이 아니다. 그것은 내 어깨에 살짝 내려앉는 따뜻한 손길이다. 우리는 먼 빛이 아니라, 바로 옆의 빛에서 용기를 얻는다. 바로 곁에서 켜지는 누군가의 등불에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의 밤을 밝힌다.


나는 강대원 박사를 ‘반도체의 북극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1980년대, 한국은 반도체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자기 제한적 믿음에 갇혀 있던 우리에게, 강대원이라는 별은 자기 효능감을 일깨웠다. 강대원이라는 북극성 아래, 한국의 메모리 산업이 태어났고, 그의 별빛은 한국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걸을 길을 비추었다. 우리는 신명 나게 메모리를 연구했고, 이제는 AI 시대를 여는 최첨단 메모리 HBM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


강대원 박사는 실리콘이라는 대지 한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른 별이었다. 그 별이 있었기에 트랜지스터가 길을 만들었고, 그 길 위에서 메모리가 기술의 숨결을 저장했다. 그 숨결 위에 AI가 꿈을 꾸었다. 나는 강대원 박사를 부르는 가장 본질적인 이름을 ‘반도체의 북극성’이라 명명했지만, 그의 별빛은 이미 AI 밤하늘에까지 드넓게 스며들어,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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