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편집
오마주는 자신이 좋아하는 선배를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존경을 표하는 예술의 표현 방식이다. 그래서 오마주는 흉내가 아니라 대화다. 선배의 작품 장면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선배에게 묻는다. “여기서는 왜 그렇게 찍으셨어요?” 후배는 선배의 세계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다시 세상에 선보인다. 궁극적으로는 선배와 후배는 자신의 작품을 매개로 친구가 된다.
그렇다면, 오마주와 표절은 어떻게 구별될까? 저작권법에 오마주와 표절의 경계는 선으로 그어져 있지는 않다. 일단 가장 큰 차이는 오마주는 선배의 세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원작의 아이디어에는 고개를 숙이지만, 후배 창작자는 자신만의 표현으로 선배의 세계를 변주한다. 반면에, 표절은 선배의 세계에 대해서 일절 말하지 않는다.
문제는 저작권이 현존하는 경우에도 오마주가 인정되는지이다. 즉, 오마주라는 형식으로 원저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차용하는 경우에, 저작권법적으로 면책될까? 저작권법에는 오마주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저작권의 본질은 아이디어에 있지 않고, 구체적인 표현에 존재하므로, 구체적인 표현을 후배 창작자가 선택하는 경우에, 오마주는 인정될 수 있다.
내 마음속 최고의 오마주 영화는 ‘인디안 썸머’다. 노효정 감독의 ‘인디안 썸머’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오마주 하고 있다. 두 영화의 아이디어는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하고 복역하는 젊은 여인의 회한과 미련이다. 나는 ‘인디안 썸머’를 여러 번 반복해서 감상했지만, ‘만추’는 탕웨이와 현빈 버전으로 유튜브에서 돌아다니는 짤막한 영상만을 봤을 뿐이다.
나는 지금도, 박신양의 마지막 독백을 들으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겨울이 오기 전 가을의 끝에 찾아오는 여름처럼 뜨거운 날,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지만, 그 모두가 기억하지는 못하는 시간. 다만 겨울 앞에서 다시 한번 뜨거운 여름이 찾아와 주길 소망하는 사람만이 신이 선물한 짧은 기적, 인디안 썸머를 기억한다.”
내 앞에 박신양이 있었다면, 이미연 앞에서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부르라고 충고할 것이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조금 멀리 돌아왔지만 기다려왔다고/널기다리는 게 나에게 제일 쉬운 일이라/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고/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널 사랑하는게 내 삶에 전부라/어쩔 수 없다고 말야”
박신양이 이미연을 만나서 자신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대사를 듣는다면, 나도 박신양에게 홀라당 넘어갔을 것이다. “죽고 싶다는 말이 살고 싶다는 말보다 더 절실하게 들리는 거 알아요?” 박신양은 전도유망한 젊은 변호사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국선변호를 성심껏 수행한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말을 계속 쏟아내는 이미연의 얼굴에서 간절함을 느끼며, 그녀의 마음에 울림을 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행복한 대목은 박신양의 변호 덕분에 석방된 이미연과 박신양이, 해변이 멀리 보이는 언덕을 걸으며, 이미연이 자신의 마음을 박신양에게 고백하는 장면이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으로 가기 전에 들르는 곳이 있데요. 거기서 자기가 살았던 동안에 기억 한 가지를 선택하는 거에요. 그 얘기를 듣고부터 고민했어요. 가져갈 기억이 없으면 어떡하나.”
이 대사를 곰곰이 음미해 보면, 이미연은 ‘자기가 살았던 동안에 기억 한 가지’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박신양에게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가 살아왔던 세월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새겨진 꽃무늬를 하나 이상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도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그런 자신의 인생에 햇볕을 드리운 박신양에게 고마움을 자신만의 언어로 조심스럽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는 ‘인디안 썸머’가 노효정 감독의 전유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창작은 혼자서 태어날 수 없다. 언어는 이미 누군가의 목소리를 거쳤고, 문자도 다른 사람의 손을 통과했다. 우리는 선배 세대가 남긴 유산 위에서 창작을 시작한다. 문화 선도 사회에서는 이미 3루 베이스 위에 서 있어서, 땅볼 하나면 득점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오마주야말로 저작권이 시대의 공유물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창작은 예술가의 성취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가 축적한 퇴적물이다. 저작의 문장은 개인이 썼지만, 그 문장 속에는 수많은 선배들의 호흡과 기억이 섞여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인디안 썸머’의 멋들어진 변주가 끊임없이 쏟아지길 오늘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