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거스르기

낭만 과학

일요일 아침 9시 반에 광합성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오늘의 목적지는 석파정이다. 석파정은 10시에 문을 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두른다. 어제의 온화함에 마음을 놓고 있다가, 예상치 못한 찬 기운에 살짝 놀란다. 나의 한가로운 산책을 시샘하기라도 하듯, 땡깡을 부리고 있다. 일단 옷깃을 여민다. 택시 드라이버의 운전 신공으로 석파정에 도착하니, 9:57이다. 평소 오픈런을 디스해 온 내가, 오픈런을 하고 있다.

2층을 거쳐 4층으로 오르면, 석파정 입구에 도달한다. 석파정은 160여 년 전 최고 권력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서다. 입구부터 이하응의 손길이 느껴진다. 나는 이하응의 흔적을 뒤로하고, 가장 큰 산책로를 따라 산길을 오른다. 석파정은 기암괴석과 비경을 품고 있다. 집에서 차로 1시간 이내에, 나의 로망, 설악산의 막둥이 같은 산을 올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산을 오르려면, 중력을 이겨내기 위해서 용을 써야만 한다. 산에 오르면 숨이 차는 건, 위치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바뀌는 현상이다. 우리의 근육은 산의 높이만큼 떨린다. 우리는 중력을 이기지는 못하지만, 산에 오른 위치 에너지만큼, 잠시 더 높은 세계를 빌리는 것이다.

나도 더 높은 세계의 풍광을 관조하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며, 호젓한 여유로움을 만끽한다. 드뎌, 회색과 연갈색이 섞인 거대한 바위가 하늘로 향해있는 석파정의 속살이 보이기 시작한다. 너럭바위다. 널찍하고 평평하게 펼쳐진 바위가 내 머리 위에서 편히 쉬고 있다. 나는 너럭바위를 올려다보며, 하늘도 천천히 둘러본다. 너럭바위를 계속 쳐다보다가, 혹시 ‘너럭바위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주위를 살펴본다. 오늘도 역시나 위로 오르는 길은 봉쇄되어 있다. 순간 영화 ‘황비홍’의 이연걸처럼 구양신공을 익히면, 중력을 거슬러, 너럭바위 위로 가뿐히 올라갈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

우리의 조상들은 오랜 세월 비와 바람을 이기고, 꿋꿋이 버텨낸 너럭바위를 보면서, 인간의 겸손함을 절감했을 것이다. 이 영험한 너럭바위에 우리들은 자신들의 소원을 빌고 있다. 우리의 어머니는 자신의 소원보다는 자식의 합격이나 성공을 빌었다.

문득, 나대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 스치듯 지나간다. 어니스트도 지금의 나처럼, 자신의 고장에서 바라다보이는 큰 바위 얼굴을 쳐다봤겠지? 그는 나와는 달리, 큰 바위 얼굴을 올려다보며, 위대한 얼굴을 닮기를 빌었을까? 어니스트는 그 얼굴을 닮은 이상적인 위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허명의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조금도 닮지 않았다. 그는 큰 바위 얼굴을 바라다보며, 묵묵히 기다렸다.

어니스트는 수천 번의 비와 셀 수 없는 계절이 조각해 낸 위대한 얼굴을 매일 올려다보며, 자신의 마음을 닦았다. 그는 큰 바위 얼굴을 자신의 이상을 비추는 거울로 삼으며, 그저 자신의 고장을 변함없이 지켰다. 마침내 그의 얼굴에는 큰 바위 얼굴의 위대함이 새겨져 버렸다. 나는 어니스트와 같은 인내심이 없다. 나는 너럭바위 아래에서 그저 기도할 뿐이다. “세파를 헤쳐나갈 용기와 지혜를 주세요!”

나는 조용히 석파정 입구로 내려온다. 산의 중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용을 쓰면 되지만, 나이가 들면, 중력을 거스른 대가를 무릎도가니에 차곡차곡 쌓는다. 우리는 젊을 때 등반했던 도전의 짜릿함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 끊임없이 산에 오르지만, 한 번 오를 때마다, 우리의 몸은 말없이 받아 적었다. 특히 등산은 자신의 관절을 담보로 잠시 산의 높이를 빌렸을 뿐이다.

나는 등산을 심하게 하지 않았음에도, 요즘 산을 내려오면, 도가니가 쑤신다. 중력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산에 오르면, 즉시 벌을 받지는 않겠지만, 나중에는 조용히 무서운 청구서를 받게 될 것이 명징하다. 이제는 얼마나 높이 오를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내려올 수 있는가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겠지?




작가의 이전글이름 없는 별에서 사는 공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