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편집
고흐는 다양한 구두를 그렸다. 단톡방에 고흐가 그린 아홉 가지의 구두 그림이 올라온다. 나는 워커 그림에 눈길이 머문다. 나에게 워커가 주는 의미는 굴레다. 나는 우리 동네 특공대에 복무했던 184일 동안만 워커를 신었다. 이후 예비군 훈련 이외에는 워커를 신지 않았다. 고흐가 살았던 당시에는 워커가 농민이나 노동자의 신발이었다. 워커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이탑 구조로 험한 작업 환경에서 발목을 보호하기에 적합했다. 그리고 두터운 가죽은 거친 땅이나 가혹한 날씨에도 농민이나 노동자의 발을 효과적으로 감쌌다.
이 그림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벼룩시장에서 중고 워커를 직접 샀다. 처음 샀을 때는 꽤 멀쩡한 상태였지만, 고흐는 비 오는 날 워커를 신고 진흙탕 길을 한참 동안 산책하며 일부러 낡고 더럽게 만든 후에야, 비로소 캔버스 앞에 앉았다고 한다. 고흐는 왜 벼룩시장에서 산 워커를 노동자가 신은 것처럼 연출했을까?
고흐는 이 워커에 자신을 투사한 것을 아닐까? 고흐는 평생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방랑했던 예술가였다. 파리에서 아를까지 그는 끊임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에게 신발은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매개체이자, 자신의 고단한 여정을 묵묵히 견뎌준 친구였다. 투박하고 볼품없는 워커의 모습은, 세련된 도시의 예술가들과는 거리가 멀었던 자신의 투박한 진심과 예술적 고집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워커의 가죽은 군데군데 해졌고, 형태가 뒤틀려 있어 오랜 시간 험한 일을 하며 신었던 것으로 짐작하게 한다. 워커 끈은 풀린 채 바닥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워커는 끈을 단단히 조여 매야만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 이는 더 이상 긴장 상태를 유지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하루 종일 삶의 무게를 버티다 돌아와, 워커를 벗어던진 순간의 상태에서, 고흐는 워커를 통해서 해방과 방전을 동시에 그리고 있다. 그리고 처진 워커 끈은 그의 신경이 느슨해지다 못해 바닥까지 가라앉은 그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또한 정갈하게 묶이지 않고 뱀처럼 꼬여 있는 워커 끈의 형태는 고흐의 불안정한 심리를 투사하고 있다. 워커 끈은 워커의 형태를 잡아주는 유일한 장치이지만, 이것이 풀려 있다는 것은 고흐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워진 마음을 묘사한 것은 아닐까? 워커 끈을 묘사한 붓 터치는 매우 거칠다. 이는 정적인 휴식이 아니라, 고흐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나는 여기에서 김우창 선생의 대사를 소환한다.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자폐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고흐도 예술가로서의 자폐적인 삶을 살았다. 고흐는 자신을 투사한 워커를 통해서, 외부 세계를 차단하는 심리적 갑옷과 고립된 공간이라는 메시지를, 세상을 향해 던지고 싶지 않았을까?
워커는 얇은 단화와 달리 발을 완전히 감싸고 외부의 충격을 막아주는 견고한 신발이다. 고흐에게 이 워커는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평가로부터 자신의 연약한 자아를 지켜주는 심리적 갑옷이었다. 가벼운 구두가 아니라 묵직한 워커를 선택한 것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땅에 발을 붙이고 버티겠다는 다짐을 투영한 것이다.
한편, 이 그림에는 발이 들어있지 않다. 텅 빈 워커 내부는 고흐의 사회적 고립을 상징한다. 신발은 사람이 형상을 대신하지만, 정작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타인과 섞이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된 고흐의 자폐적인 생활양식을 보여준다. 신발 배부의 어둠은 고흐가 침잠했던 내면의 동굴이다. 그는 그 어둠 속에서 자신만으로 예술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워커 끈을 묶는 것과 같은 최소한의 예절이 필요하지만, 고흐는 오직 자신만의 그림에 매몰되어, 사회적 규칙은 관심이 없었다. 풀린 채 꼬여 있는 끈은 누구와도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하고 엉켜버린 고흐의 인간관계를 상징하며, 그 상태가 고흐에게는 가장 솔직한 자신의 모습이다.
고흐에게 이 워커는 세상과 섞이지 못하는 자신을 온전히 담아내는 매개체였다. 비록 끈은 풀리고 가죽은 해졌지만, 그 안에서 고흐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정한 예술가로 존재할 수 있었다. 나는 고흐에게 김우창 선생의 대사를 들려주며 위로하고 싶다.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자폐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