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낭만적일까

낭만 과학

18세기 서구 사회에서는 과학을 기계적으로 바라보며, 자연을 착취하기 시작한다. 이에 반발한 괴테는 과학이란 사유가 감각과 맞닿는 직관이라 생각한다. 괴테에게 이러한 순간은 이성만의 것이 아니라, 감정과 사유가 한 몸처럼 진동하며, 신비로움을 던져주는 낭만적 사건이다. 그래서 괴테는 과학은 낭만적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과학입국’이라는 사탕발림에 홀라당 넘어가, 과학자는 나에게 주어진 국가적 소명이라고 착각했다. 문과와 이과를 선택할 때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이과를 선택했다. 고딩 3학년 때는 그냥 점수에 맞춰서 ‘전자공학과’에 지원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즈음에는 이과 수석을 물리학과와 전자공학과에서 도맡았다. 나도 전자공학과에 합격하니, 주변에서는 부러움의 시선을 끊임없이 던졌다. 나는 타인의 부러움에 한껏 취했다. 이 합격의 약발은 2달까지만 유지됐다.

나에게 현타를 안긴 것은 바로 물리였다. 나는 대학 첫 물리 시험에서 ‘19점’을 받았다. 대학 전 12년 동안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점수를 보자마자, 나는 멘붕에 빠졌다. 그 순간, 물리는 산 위에 존재하는 지옥(嶽) 같았다. 이후 물리는 평범한 산이 아니라, 하늘에 닿을 듯 버티고 서있다가 가까스로 오르는 이들을 시험하는 험준하고 장엄하며, 동시에 지옥 같은 바위산으로 자리 잡았다. 한 겹의 안개로도 가릴 수 없는 검은 바위의 첨봉처럼 솟아오른 거대한 벽이었다.

나는 한유가 화악산을 오르고 진정 산에서 지옥을 봤다고 노래했던 것처럼, 물리를 공부하다, 한유가 화악산에서 마주한 지옥의 골짜기를 보았다. 그 지옥의 골짜기에서 인간의 지식이 한계에 부딪히는 어둠을 수없이 마주했다. 나에게 물리는 그랬다. 난해함의 가장 깊은 골짜기에서, 하나의 법칙, 하나의 해석, 하나의 직관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거대한 바위산을 외면하기도 하고, 관조하기도 하면서, 어떻게 하면 과학을 낭만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살고 있다. 과학을 낭만적으로 본다는 것은 과학을 예쁘게 감상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과학을 낭만적으로 본다는 것은 세계가 움직이는 그 깊은 결을 숫자 너머의 떨림을 느끼는 것 아닐까? 과학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이해하지만, 이해가 깊어질수록 세계의 더 큰 모름이 우리 눈앞에 열린다. 낭만은 그 모름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모름의 어둠 속에서 세계가 더 넓다는 사실에 감동하는 마음에서 자란다. “나는 모른다”는 고백이 좌절이 아니라 경외가 될 때, 과학은 낭만이 될 것이다.

물리를 공부하다 보면, 세계가 기이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고, 빛은 입자도 파동도 아니며, 우주의 95%는 우리가 모르는 물질과 에너지로 차 있다. 이 기묘함 앞에서 “세상은 놀랍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이 감탄이 바로 낭만이다. 세상의 기이함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기이한 그대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낭만의 본질이다.

과학은 사실을 밝히지만, 낭만은 사실과 우리가 맺는 관계를 바꾼다. 빛을 관찰할 때, 단순히 굴절률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천 년 전 별에서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이 조용히 일렁이는 찰나, 그때 우리는 세계와 대화를 시작한다. 과학이 설명을 준다면, 낭만은 설명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울리는 방식이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들던 밤, 패러데이가 전자기장을 종이에 그리던 순간, 아인슈타인이 시공간을 마음속에서 뒤집던 아침, 과학의 발견은 기술이 아니라 세계의 어둠을 향해 조용히 손을 뻗는 인간의 용기에서 시작되었다. 그 용기를 바라보는 눈, 그 인간적인 떨림을 읽어내는 감수성, 그것이 과학을 낭만으로 바꾼다.

결국은 과학의 낭만은 ‘세계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깨달음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 알게 된다. 세계는 이미 설명된 책이 아니라, 아직 끝까지 쓰이지 않은 서사이며, 과학자는 그 서사의 페이지 사이를 조용히 넘겨보는 독자이자 작가라는 것을. 세계가 미완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탐구할 수 있고, 계속 질문할 수 있으며, 계속 경이로워할 수 있다. 이 미완성의 아름다움이 과학의 가장 빛나는 낭만이다. 과학을 낭만적으로 본다는 것은, 세계가 여전히 우리보다 크고, 여전히 다 설명되지 않았으며, 그래서 여전히 낭만적인 여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조용히 감동하는 마음이다.

예전에는 거대한 바위산 같은 물리를 오르겠다는 야망이 있었다. 과학을 낭만적으로 본다는 것은 “저 산은 왜 그렇게 생겼을까?”라는 순수한 한 줄기의 호기심일 것이다. 이제는 과학이라는 바위산을 나만의 길에서 느린 걸음으로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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