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사람들을 지킨 자

창작 편집

지난주에 슬픔은 휘발되고 비탄만 남은 장릉을 거닐면서, 16년 만에 너무도 홀연히 사라졌지만, 우리들의 마음에 오랫동안 아름다운 패자로 남아 있는 단종을 되뇐다. 그러다가 오늘은 단종의 마지막을 그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감상한다. 단종은 육지의 섬 유배지, 청령포에서 자신을 돌봐준 엄흥도에게 울부짖는다. “아끼는 사람들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다.” 과연 단종은 마지막까지 누구를 지키고 싶었을까?

영화에서는 자신을 복위시키려다 처형당한 사육신과 수많은 가신들을 포함해, 서슬 퍼런 한명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을 끝까지 살뜰히 챙기는 엄흥도를 지키고 싶어한다. 단종은 엄흥도에게 이 말을 이어서 하고 싶지 않았을까? “내가 사라져, 이 비극이 멈출 수만 있다면” 단종의 대사에서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백성들이 더 이상 정변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는 처연한 결단이 엿보인다.

여기서 나는 공자가 꿈속에서라도 만나고 싶었던 주공을 소환한다. 주공은 주나라 무왕의 동생으로, 무왕 사후에 어린 조카 성왕이 왕위에 오르자 7년간 성심껏 섭정을 수행한다. 그리고나서 성왕이 성년이 되자, 스스로 섭정에서 물러나 제후의 자리로 돌아간다. 공자는 이런 주공을 도덕적 이상 국가의 설계자이자, 완벽한 성인으로 평가했다. 나는 권력을 내려놓음으로써,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지켜낸 주공을 고귀한 인물이라고 찬사 하고 싶다.

반면에 세조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조카이자, 상왕을 육지의 섬, 청령포로 유배를 보낸다. 영상으로 보는 청령포는 평온하지만 애잔하다.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뒤편은 험준한 절벽으로 가로막혀 뗏목을 타지 않고는 나갈 수 없다. 정면의 모래사장은 강물과 맞닿아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하지만, 이곳에 머무는 이에게는 고독감을 극대화한다.

세조도 자신이 주공과 대비될 거라고 예상했을까? 세조는 종사를 안정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단종을 유배 보내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했다. 주공은 자신의 조카를 끝까지 보호했지만, 세조는 본인의 권력욕을 위해서 권력을 탈취했다. 그 대가로 조카를 죽이며 왕위를 찬탈한 군주라는 굴레를 영원히 벗지 못했다.

그렇다면, 16세에 유명을 달리한 단종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가? 청령포의 노송, 영월의 물줄기, 슬픔은 휘발되고 비탄만 남은 장릉, 그리고 그가 남긴 애달픈 시구는 단종을 단순한 패배자가 아닌 비극적 서사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조가 승자로서 역사 기록을 독점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초들은 단종을 영월의 산신령으로 모셨다.

단종이 엄흥도에 던졌던 대사는 너무도 강렬하다. “아끼는 사람들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다.” 단종은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음으로써 자신을 따르던 이들의 정당성과 자신의 도덕적 가치를 지켜냈다. 단종은 주공처럼 힘이 있어 지켜낸 것이 아니라, 가장 무기력한 상태에서도 끝까지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단종 자신의 이름을 역사 속에서 영원히 지켜낸 셈이다.

역사에는 ’if’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해석만 남을 뿐이다. 역사에 ‘if’가 없다는 사실은 나를 슬프게 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역사는 나에게 강력한 교훈을 준다. 만약 주공처럼 세조가 단종을 지켰다면, 우리는 단종이라는 이름에서 이토록 깊은 안타까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역사를 해석하는 이유는 과거를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다. 현재의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단종의 눈물을 무능한 왕의 패배로 볼 것인지, 도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고귀한 희생으로 볼 것인지는 지금을 사는 우리의 해석에 달려 있다. 우리가 어떤 가치관으로 단종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단종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비극으로 끝난 과거의 사실을 아름다운 희생이나 경계해야 할 교훈으로 해석해 내는 순간, 잠들어 있던 역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게 된다. 결국 역사는 기록된 자들의 삶을, 기억하는 자들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새롭게 구성된다. 16세 단종을 ‘아끼는 사람들을 지킨 자’로 해해보면, 그의 죽음은 허무하지 않고, 가장 힘든 상태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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