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편집
이제 일상으로 복귀한다. 이번 연휴 동안은 매일 새로운 이벤트가 있었다. 그리고 주말에는 아들의 생일 파티가 남아 있다. 18년 전 내 곁에 홀연히 찾아온 아들. 아내를 만난 것은 34년 전이니, 아내와 둘만의 세월은 16년이다. 셋이 같이 산 세월이 더 길다. 아들은 지금 고 3이라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잘 견뎌주기를 기원할 뿐이다.
아들이 14세 때 나랑 같이 사격장에 갔다. 사격 조교가 오른손잡이는 왼쪽 눈을 감고 사격하라고 지시했는데, 나는 오른쪽 윙크만 가능해서 그 지시를 따르지 못했다. 오른쪽 눈을 감고 사격을 하니, 탄착군이 조준점을 오른쪽 사선으로 벗어난 곳에 형성됐다. 신기한 점은 아들도 나랑 마찬가지로 오른쪽 윙크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아들이 오른쪽 윙크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때 아내를 비롯한 동행한 모든 사람들을 확인한 결과, 나랑 아들을 제외 하고는, 양쪽 윙크가 가능했다. 순간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아버지도, 오른쪽 윙크만 가능하세요?”
오른쪽 눈만의 윙크가 유전일까? 이런 의문이 들면서 처음으로 ‘유전의 현타’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만약 아내도 나처럼 오른쪽 윙크만 가능했다면, 그냥 일상적인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을 것이다. 사격장이라는 특수한 환경 덕분에 아들과 나만의 비밀을 발견해서 신기했다. 그리고 ‘아버지, 나, 아들에게 보이지 않는 유전이 전해 내려오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랑 아들만 오른쪽 윙크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나에게 다양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아버지에게 여쭤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치사랑이고, 아들과의 유전적 공통점을 신기해하며, 글을 쓰는 마음이 내리사랑일까? 우리 사회에서 내리사랑은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이 자연의 섭리처럼 아래로 흐른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부모는 자식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나는 사격장에서 아들의 실수가 나의 신체적 특징 때문임을 알았을 때, 답답함보다는 ‘나를 닮았구나’라는 묘한 동질감과 애잔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회상했다. 아버지를 기억하는 모습은 집에 들어오면 서예를 썼던 장면뿐이다. 신해철의 시 ‘아버지와 나’에서 아버지를 묘사하는 부분과 겹친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아버지와 나는 35년 차이가 나고, 아들과 나는 37년 차이가 난다. 아버지와 아들은 72년 띠동갑이다. 나와 아들은 서울에서 살았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광주에서 살았다. 아들은 아버지가 유명을 달리하기 전까지 50일 정도 같이 생활했지만, 아들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읽힐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20대부터 신해철의 ‘아버지와 나’를 노래했지만, 아들의 오른쪽 윙크를 알고서 읽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오늘 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길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 신해철은 내 미래를 들여다보고 이 시를 썼을까? 너무 아쉽게도, 나는 한 번도 골목길을 따라 아버지를 마중 나가본 적이 없이, 그냥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갔을 뿐이었다.
다시 한번,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묵묵히 버틴 그림자’와 ‘서툰 감정 표현’만 남는다. 요즘은 아버지가 ‘내가 걸어간 길을 먼저 걸어간 고독한 선배’같다. 아버지는 나를 낳았고, 내가 넘어서야 할 산이었지만, 결국에는 내 거울이 돼가고 있다.
나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내리사랑을 어떻게 베풀어야 될까? 나는 과연 가장 아끼는 아들을 지켜줄 수 있을까? 아버지는 내가 방황하고 있을 때마저도 묵묵히 나를 지켜봤다. 아들이 가장 힘든 터널을 지나고 있는 지금, 뭐라 위로할 수 있을까? 아들과 나도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가며, 더욱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