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감 청자에 내 마음을 싣다

창작 편집

삼일절 연휴 첫날 아침 국중박으로 향한다. 이제는 완연한 봄기운이 거리 곳곳에 넘쳐난다. 오픈런을 하기 위해서 서둘러 지하철에 오른다. 왕십리역에서 중앙선을 기다리지만, 10분이 지나도록 함흥차사다. 오픈런은 텄다. 이촌역에서 내려, 국중박 전용 출구를 찾지만, 특별히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미 나랑 동일한 관람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나가면 얼마나 많은 인파가 줄을 서고 있을까?

오픈한 지 10분 남짓 지났지만, 인산인해의 사람들이 국중박 입구 쪽을 향해 등을 보이며, 입장을 기다리기 위해서 줄을 서고 있다. 2025년 600만의 관람객이 국중박을 찾았다고 하니, 2만여 명의 에너지가 엄청나다. 일단 나도 그 행렬에 참여한다. 가족이나 연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인파가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누군가 스태프에게 묻는다. “가방 없는 사람은 어디로 가나요?” 그가 친절하게 답한다. “전용 입구로 가시면 됩니다.” 이 구원의 메시지는 나를 대기 줄에서 해방시킨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도, 영화 상영 직전의 인파를 능가한다. 나는 박물관 위를 관조하며, 피난 공간을 스캔한다. 2층은 조금 한가롭다. 잽싸게 계단으로 오른다. 가장 여유로운 곳으로 걷는다. 그러다 우연히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다. 상감 청자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상감 청자가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눈을 비비며 안내판을 확인한다. 분명 상감 청자다. 급하게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켜고, 셔터를 누른다. 사진을 확인하니, 내 그림자가 상감 청자에 드리워져 있다. 순간 묘한 기분이 든다. 이런 게 물아일체일까?

나는 전자공학을 공부했지만, 전공에는 젬병이었다. 그나마 석사 과정에서 반도체에 살짝 관심을 가졌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구리 배선 방식인 다마신 공정(Damascene Process)이었다. 다마신 공정을 처음 들으면, 일본어 같다. “이 엄청난 것을 일본 엔지니어가 발명했을까?” 나는 영어 사전을 찾는다. ‘Damascene’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의 형용사다. 그리고 ‘Damascene Process’는 상감기법이란다. 직감적으로 고려의 상감기법은 다마스쿠스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마신 공정은 특별하다. 대부분의 메탈 배선은 메탈을 웨이퍼 전면에 형성하고, 원하는 패턴을 에칭 하면 된다. 구리는 에칭 하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상감기법을 차용한 것이다. 미리 웨이퍼에 ‘∪’ 형상의 공간을 비운 뒤에, 거기에 구리를 넘칠 정도로 충분히 채운다. 넘친 구리는 갈아 내면 된다. 이 다마신 공정 덕분에 HBM에서 메모리를 겹겹이 쌓고 있는 것이다.

고려의 상감기법이 천년의 터널을 지나, 오늘날 반도체 엔지니어에게 영감을 전수할 수 있다니! 이 격한 감동을 오언절구로 남기고 싶다.

題象嵌靑瓷(제상감청자)

碧玉千年調(벽옥천년조)

蓮花一露香(연화일로향)

影吸象嵌紋(영흡상감문)

物我一體忘(물아일체망)

상감 청자에 내 마음을 싣다

벽옥 푸른 색조는 천 년을 머금고

연꽃잎 위론 향기로운 이슬 한 방울 맺히는구나

내 그림자 상감 문양 속으로 스며드니

상감과 나, 서로를 잊은 채 하나가 돼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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