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편집
처음으로 독립영화 ‘미스터 김 영화관에 가다’를 보기 위해서 집을 나선다. 이 독립영화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아트나인’에서만 하루에 한 번 상영하고 있다. 이 영화관은 소형 극장이지만, 여러 개의 독립영화를 상영한다. 영화는 김동호 감독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미스터 김, 김동호 감독은 구순이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위기에 빠진 우리 극장계를 살리기 위해 캠코더를 들었다. 미스터 김은 불편한 걸음걸이로 우리나라 전역과 세계 유수 극장을 누비며, 감독과 영화 관계자들을 인터뷰한다. 미스터 김의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에게 영화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임순례 감독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그는 답한다. “영화관은 빛이 들어오는 동굴입니다.” 영화관은 기본적으로 외부의 빛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밀폐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동굴과 닮았다. 다만 동굴은 빛이 외부에서 들어오지만, 영화관의 빛은 내부에서 우리를 항해 쏟아진다.
임순례 감독의 답변을 들으니, 문득 ‘생활의 발견’의 한 대목과 겹친다. “창창한 앞날을 가진 문학적인 천재가 아무 소용도 없는 사회적 모임에 자주 나오고, 시국 문제에 대한 논문을 쓰느라고 정력을 마구 낭비하고 있다고 할 때 그를 구해낼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방법은 감옥에 집어넣는 일이다.” 나는 문학적인 천재는 아니지만, 임어당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나는 영화관을 ‘자초한 감방’이라 규정하고 싶다.
우리는 스스로를 영화관이라는 감방에 가두고, 감독이 창조한 세상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난다. 보통의 여행에서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지만, 영화관이라는 감방에서 우리는 감독이 허락한 것만을 볼 수 있다. 카메라가 클로즈업하는 주인공의 떨림, 롱샷으로 잡히는 광활한 풍광, 우리는 감독의 시선에 완전히 동기화되어, 그가 창조한 질서 속에 묶여 있다.
영화는 영상이라는 미디어를 통해서 감독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소설은 문자라는 미디어를 통해서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는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장악한다. 영화는 “슬프다”라는 문자 대신, 배우의 눈물이나 미세한 떨림을 한꺼번에 쏟아붓는다. 문자는 머릿속에서 이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영상은 눈에 꽂히는 순간, 감독의 메시지는 논리보다는 체험으로 즉각 전달된다. 어떤 면에서는 감독은 독재적이다.
반면에 소설은 작가가 던지는 문자를 독자 스스로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해독해야만 한다. 작가가 씨앗을 뿌리면, 독자가 마음의 토양에서 꽃을 피우는 공동 작업을 수행하는 셈이다. 문자에는 너른 여백이 존재하여, 그 여백을 독자가 메꾸기 때문에, 소설의 메시지는 훨씬 더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영화나 소설 둘 다, 해석은 감상자의 몫이다. 감독이 아무리 영상이라는 강력한 미디어로 우리를 자초한 감방에 가두며 시공간을 통제하더라도,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의 의미를 결정하는 최종 승인권은 결국 영화 관람객이 쥐고 있다. 주인공의 눈물을 보면서 누군가는 회한으로 읽고, 누군가는 해방으로 이해한다. 불이 켜지고, 영화관의 문이 열리는 순간, 감독의 독재는 끝난다. 결국 각자 삶의 궤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소설은 문자 사이의 여백을 독자가 채우며 해석을 완성한다면, 영화는 쏟아지는 영상 속에서 관람객이 자신에게 필요한 의미를 걸러내며 해석을 완성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작가나 감독이 던지는 공을 받아내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라는 본질은 동일하다. 어쩌면 우리는 감독이 설계한 상상의 감방에 자초해서 갇히는 대신에, 그가 창조한 세상을 내 마음대로 재구성할 권리를 원초적으로 갖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러한 영화를 자초한 감방에서 감상할 때, 우리는 감독의 메시지를 오롯이 잘 흡수할 수 있다. 영화관이라는 감방은 모든 노이즈를 차단하고,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수신의 순도를 극대화한다. 물론 영화라는 정신적인 양식을 상상의 감방이든 OTT든, 보다 자주 섭취하는 것이 알약으로 섭취하는 것보다는 낫다.
요약본이나 단편적인 정보는 결과만 있는 알약인 반면에, 영화관이나 OTT를 통해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은 정성껏 차려진 정찬이다. 이러한 알약이 지식은 줄 수 있어도 감동을 줄 수는 없다. 편리한 알약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자초한 감방에 가두면서 정신적인 양식을 직접 맛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생활의 발견: 임어당 지음/안동민 옮김/문예출판사/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