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믿음과 구별되는가

낭만 과학

하이젠베르크는 ‘부분과 전체’에서 자신이 18세부터 64세까지 연구했던 자연과학의 주제나, 그것과 관련되는 화두를, 파울리, 디랙 그리고 평생의 스승으로 모신 보어와 허심탄회하게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나에게는 이 중에서 ‘자연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첫 번째 대화’가 가장 인상적이다.

보어는 하이젠베르크에게 종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밝힌다. “종교가 인간 공동체의 정신 구조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때, 종교를 역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볼 것인지,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 공동체가 종교와 같은 구조를 발전시켜 나가고, 그 구조의 지식에 맞추어나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이 대목을 처음 읽으면,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그러고 나서 드는 생각은 ‘근데 보어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인데, 도통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일단 지금 나는 비종교인이다. 물론 어릴 때는 개신교 신자였던 어머니를 따라서 초딩 1학년 때부터 고딩 1학년 때까지 교회에 나갔었다. 그 이후에는 특별히 개신교나 다른 종교를 믿지 않고 있다. 고딩 2년간은 대학 입시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어쭙잖게 마르크스의 핑계를 대며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디랙도 나처럼 마르크스에 의존하고 있다. “종교는 일종의 아편이야. 민중이 행복한 소망 가운데 취하여 자신들이 당하는 불의를 용납하도록 건네진 아편이지.”

다만, 조심해야 될 것은 마르크스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했던 1860년대에는 아편이 마취제로 사용되고 있었다. 따라서 아편을 마약의 일종으로 보기보다는, 단순한 마취제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마르크스의 취지에 합당하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종교인으로 살지 않았던 나는, 보어의 의견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따라서 보어가 속해 있는 서구 사회의 역사에 비추어 그의 취지를 살펴본다. 서구 사회는 중세 이후에 기독교가 정치, 도덕, 문화, 예술의 근본 동력이었다. 십자군 전쟁, 종교개혁 등 모두 기독교가 움직인 역사이다. 계몽주의 이후에도 내면의 의미 체계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서구 사회는 기독교의 정신 구조를 계속해서 재구성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막스 베버가 주창했던 ‘프로테스탄스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을 통해서 개신교 정신을 재해석했다. 서구 사회는 19세기 후반 동안에 마르크스의 ‘자본론’ 광기에 매몰되어 있었고, 베버는 이를 깨기 위해서 경제적 성공을 구원의 징표로 간주하며, 세속적인 직업 활동도 신의 뜻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해석함으로써, 자본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지금도 베버의 ‘프로테스탄스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은 자본주의를 견고하게 지탱하는 전가의 보도로 작동하고 있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대화가 경이로웠던 점은 분명히 두 학자는 나와 유사하게 자연과학을 공부했지만, 자신이 공부했던 분야를 확장시켜 철학적으로 사유했던 것이다. 나는 문과/이과를 선택할 때, 단순히 수학을 조금 잘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전자공학을 공부했다.


회고해 보니, 나는 대수 문제는 잘 풀었지만, 기하 문제는 잘 풀지 못했다. 그때 잘 풀지 못하는 기하 문제는 패턴을 암기해서 겨우 풀었다. 대학에서 공부할 때가 되어서야, 고딩 시절의 임시처방이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켰다. 내가 대학 전공을 너무도 단편적으로 선택한 대가는 혹독했다. 나는 대학 다니는 내내 방황했다.

고딩 친구도 나와 비슷하게 수학을 잘한다는 이유로, 이과를 선택했고, 대학에서는 건축공학을 공부했다. 그 친구는 연극에 매우 열정적이었고, 대학 시절에는 자신이 쓴 희곡을 바탕으로 전국 대학 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는 지금 연극 관련되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나나 고딩 친구는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단편적으로 선택한 결과,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과 별개의 직업을 갖게 된 것이다. 그나마 나는 대학에서 공부했던 것이 현재 업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연극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내 친구는 건축공학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보어는 빛의 이중성을 설명하면서, 빛의 상보성을 제시했다. “빛은 파동과 입자의 이중적 성질을 가지며, 실험 조건에 따라 그중 하나의 특성만을 드러낸다.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이지만, 모두 빛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보완 측면이다.” 예를 들면, 빛이 이중 슬릿을 통과하면 간섭무늬를 만들며, 이는 빛이 파동으로 행동한다는 증거이고, 특정 주파수 이상의 빛을 금속 표면에 쏘이면, 전자기 튀어나오며, 에너지를 가진 광자처럼 작동하는 것은 입자로 행동한다는 증거이다.

이렇듯, 사람도 문과/이과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어, 과학 실험을 할 때는 이과적으로 행동하고, 악기를 연주할 때는 문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 체계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문과/이과의 선택을 강요하고,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나머지를 배제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문과를 선택한 학생은 ‘부분과 전체’에서 자연과학 관련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 이과를 선택한 학생은 인문학 관련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한편, 1927년 아인슈타인은 닐스 보어에게 양자역학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편지에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경구를 썼다. 아인슈타인은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설마 주사위를 던지면서 확률적으로 전자를 만들었을까? 바보들아, 양자역학은 잘못된 이론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인슈타인은 보어와의 과학적 논쟁에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과학보다 상위 단계의 테제인 종교를 채용던 것은 놀랍기만하다.

‘부분과 전체’를 읽어 보면, 하이젠베르크는 아인슈타인의 이 경구에 답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부분과 전체’라는 책 제호도 이 경구의 답하기 위해서 선택했을 수도 있다. 그는 답한다. “자연과학의 첫 모금은 무신론자로 만들지만, 잔을 끝까지 비우면 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답 너무 멋지다! 그의 답에서는 열정과 겸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어설프게 자연과학을 처음 배우면 모든 것을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자연과학의 본질을 탐구하다 보면, 자연의 신비와 조화에 경외가 생기는 것을 진솔하면서도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기독교적 배경에서 성장해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과학과 종교가 대립할 필요가 없다고 밝히면서, 양자역학이 드러낸 불확정성이 종교적 직관과 조화될 수 있음을 믿고 있다.

내 짧은 식견으로 하이젠베르크의 대답을 해석해 본다. 우리는 중딩 수학 시간에 ‘y=1/x’ 이라는 쌍곡선을 배운다. 이 쌍곡선은 x가 감소하면 y는 무한대로 접근하고, x가 증가하면 y는 ‘0’에 접근한다. 여기에서 x가 증가하여 y가 ‘0’에 접근하는 것을 ‘y=0’이라는 점근선을 이용하여 설명한다. 즉, x가 증가하면 y는 ‘y=0’이라는 점근선을 따라서 이동하지만, 절대로 y가 ‘y=0’이라는 점근선과는 만나지 않는다.

x가 이동하는 것이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것에 대비되고, x가 이동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점근선 ‘y=0’이 종교에 대비될 수 있다. 따라서 종교는 자연과학과 결코 부딪히지 않지만, 자연과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부분과 전체: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음/유영미 옮김/서커스출판상회/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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