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과학
장풍득수란 바람은 감추고, 물은 얻는다는 우리 조상이 남겨준 지혜다. 풍수의 핵심을 가장 짧고도 깊게 접어놓은 네 글자인 것이다. 풍수에서 말하는 명당은 운명을 바꾸는 마법의 땅이 아니라, 우리가 자기 리듬으로 살아갈 수 있게 허락된 공간이다. 그래서 장풍득수는 차가움을 막아내고, 기가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으로 읽힌다.
배산임수는 장풍득수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등에 산을 두고, 앞에 물을 배치하는 배산임수는 풍광이고, 장풍득수는 숨결이다. 산과 물은 눈에 보이지만,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산 없이도 마음의 장풍을 만들고, 물 없이도 관계의 득수를 형성한다.
한국의 전통 가옥은 자연을 소유하지 않았다. 대신 잠시 빌렸다. 산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창 하나를 통해 들여보냈다. 강을 담장 안에 가두지 않으며, 마루 끝에서 잠시 마주쳤다. 이것이 바로 차경이다. 우리 선조들의 차경은 배산임수의 감각이 눈으로 옮겨오며, 더 오래 풍광을 바라볼 수 있는 구조다.
요즘 한강을 따라 걸어 보면, 강은 길이 되지만, 그 옆에 나란히 즐비한 아파트는 병풍이 돼버렸다. 강의 남쪽에도, 강의 북쪽에도, 아파트는 손을 맞잡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이룬다. 마치 강을 가운데 두고, 서로 더 많은 강 풍광을 차지하려는 샅바 싸움을 하는 듯하다.
조선의 병풍은 방 안쪽만을 향했지만, 한강의 아파트 병풍은 모두가 강을 향해 얼굴을 노골적으로 내민다. 여기에는 현대 한국인의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북풍의 찬 기운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지만, 시야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오늘날 강은 아파트를 비추고, 아파트는 자기 모습을 강에 띄운다. 그래서 한강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욕망의 중앙 무대가 되었고, 아파트 병풍은 그 욕망 무대를 둘러싼 관객석이 되었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선택한 가장 민망한 장면이다.
결국, 오늘날의 서울은 장풍득수가 콘크리트로 번역된 풍광 속에 갇혀 있다. 예전에는 장풍득수는 흙과 나무의 언어로 그려졌다. 산은 등을 내주고, 물은 앞에서 맘껏 호흡하게 했다. 지금의 서울은 그 문체를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다만, 재료만을 바꾸었을 뿐이다. 산은 여전히 필요했지만, 이제는 흙이 아닌, 콘크리트가 능선의 역할을 대신한다.
아파트는 도시형 뒷산이 돼버렸고, 아파트 행렬은 현대의 병풍이 되었다. 한강은 여전히 득수의 원천이다. 다만, 농업의 물이 아니라, 실내 장식의 물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강을 향해 창을 낸다. 풍수라 부르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풍광은 자연을 복제한 것이 아니라, 기억을 재현한 풍경이다. 장풍은 여전히 필요했고, 득수는 여전히 우리의 로망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차경은 여전히 삶을 견디게 하는 위로다. 다만 이 모든 것이 유리와 철근, 엘리베이터와 평면도로 번역됐을 뿐이다.
그래서 서울은 우리에게 어딘가 모르게 낯설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익숙하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편안함과 피로를 동시에 느낀다. 자연의 언어로는 너무 멀리 와버렸고, 본능의 문체로는 아직도 예전 자리에 있다. 서울은 장풍득수를 잊지 않은 채, 자연을 잃어버렸다.
오늘도 우리는 콘크리트 아파트 능선 아래서, 유리창 너머로 한강을 바라본다. 이를 통해서, 이 도시가 아직도 북쪽의 찬 기운은 여전히 막히고 있는지, 물은 여전히 앞으로 자연스레 흐르고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우리를 편안하게 살게 하는지 자문한다.
한국인은 오래도록 장풍득수를 문화적 DNA로 간직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장풍득수는 사라지지 않는다. 종교처럼 전파되지도 않고, 이념처럼 주장되지도 않지만,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마다 조용히 개입한다. 어디에 앉을지, 어디를 바라볼지, 어디에 오래 머물지. 한국인은 장풍득수를 믿는 민족이 아니라, 장풍득수로 살아남은 민족이다. 그래서 오늘도 콘크리트 산 아래에서, 유리창 너머로 물을 바라보며, 우리는 알 수 없는 안도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