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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옹다옹하다 Nov 22. 2023

59점과 61점 사이

외줄 타기의 장인

 이번 해에만 세 번의 자격증 시험을 치렀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면 공부와 시험에 대한 중압감에서 해방될 줄 알았다. 풋내나는 기대와는 달리 인생은 매 순간이 평가와 테스트였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결정을 하고 나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판단에 따른 책임은 고지서처럼 고스란히 내 몫으로 돌아왔다. 생은 올해 못 보면 내년에 다시 봐도 되는 자격증 시험 같은 것이 아니라서 재시험을 볼 수도, 접고 다른 시험으로 전향할 수도 없었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난이도의 퀘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직장은 자기 가치를 올리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득실한 곳이었다. 총성 없는 전쟁터 같은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빼어나진 못해도 뒤처질 수는 없었다. 수많은 시험을 치르면서 도달한 결론은 나는 시험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물을 판단하는 슬기는 평균쯤 된다고 치더라도 의지에 관한 수준은 처참한 지경이었다. 누군가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쟁취에 관한 모든 것은 얼마나 인내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었다. 의지는 박약했고 욕망은 미약했으며 끈기는 힘이 없었다. 일단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기까지, 공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를 가까스로 책상 앞에 앉힌 건 합격을 향한 열망이 아니라 불합격에 대한 공포였다. 해야 할 일을 잘 미루는 사람에게도 등급이 존재한다면 투플러스 1등급은 족히 될 것이었다.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다가 시험일에 1~2주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공부를 시작하곤 했다. 당연히 합격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간혹 합격을 해도 커트라인 언저리에서 턱걸이로 겨우 붙었다. 그러니까 내 인생의 점수는 항상 59점에서 61점 사이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 위태로운 줄타기가 한심하게 보였는지 아내가 쓴소리를 했다. 어차피 할 거 좀 제대로 하면 안 돼? 왜 인생을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곡예하듯이 살아? 정곡을 찔린 나는 변명도 못하고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도 약해져 책만 펴면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집중력은 왜 그리 약한지 공상은 책 속 글자가 머리에 들어오는 것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소설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도 평소엔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공부와 비교하면 굉장한 유희로 다가왔다. 하기 싫은 행위의 순위를 매기자면 공부, 그다음으로 일, 글쓰기 순이었다. 공부보다 차라리 일하는 게 쉬웠다. 상대성의 힘은 무시무시해서 뭐가 됐든 공부로부터의 피난처가 되는 순간 꿀처럼 달콤해지는 마법을 경험하곤 했다.

 

 작년에 1차 기사 시험을 합격하고 2차 서술형에서 합격 기준에 1점이 미달한 59점을 맞아 불합격하였다. 아예 모자랐다면 덜 아쉬웠을 텐데 1점 때문에 당락이 결정된 터라 심히 억울했다. 겨우 한 문제 때문에 떨어지다니. 1차에 합격하면 1년 간은 1차 시험이 면제된다는 안전장치가 나를 안일하게 했다. 아쉬움은 미련이 되고, 결국 털어 버릴 수 없는 집착이 되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고작 일주일 공부한 주제에. 시험에 자주 낙방하는 사람들은 늘 다른 곳에서 핑계를 찾았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다. 59점이란 점수를 아내에게 이실직고하던 날, 엉뚱하게도 고양이 탓을 했다. 큰맘 먹고 책상 앞에 앉으면 자꾸 쟤들이 올라와서 방해하잖아. 노트북만 켜면 키보드 위에 앉고 책을 펴면 꼭 그 위에 눕는다고! 애써 찾아와 준 애들을 매몰차게 쫓아내기라도 할까? 쯧쯧. 아내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예 지어낸 말은 아니었다. 고양이는 심장에 해롭기만 할 뿐 딱히 공부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원해서 쓰다듬을 때는 쳐다도 안 보고 피하던 녀석들이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찾아와 훼방을 놓았다. 그러지 않아도 공부가 하기 싫었던 나는 아옹이와 다옹이를 만지고 장난치고 간식을 먹이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어쩌면 녀석들이 책상 위로 찾아와 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당당하게 노트북 위에서 식빵을 굽는 녀석들의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차마 내칠 수 없었다.  

 우유부단하고 흐리터분한 나는 거절할 줄을 몰랐다. 길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를 모조리 다 받아온 날, 오랜만에 연락이 온 동창을 만나 필요도 없는 보험을 들고 온 날, 노래도 잘 못하면서 후배의 축가 부탁을 수락한 날, 아내는 말했다. 오빠는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건 그렇게 싫어하면서 나한테만은 매번 실망감을 안기는 거 알아? 어쩌면 거절하지 못하는 일에는 누군가를 실망시키기 싫어하는 심리가 숨어 있는지 몰랐다. 모든 관계에서 완벽하고자 하는 욕심이 거절하지 못하는 결함을 만들어낸 것일까. 정작 인생 시험에서 낙방할 위기에 처한 자신은 돌보지 못하면서. 합격을 위해서는 마음을 모질게 먹어야 했다. 견물생심이라고 눈앞에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집중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아옹이와 다옹이를 방에다 두고 문을 닫았다. 너답지 않게 왜 그러냐는 듯, 평소처럼 같이 재밌게 놀자는 듯 녀석들은 방문을 긁어댔다.


 올해 상반기에 있었던 2차 시험에서 62점이라는 미미한 점수로 당당하게 합격했다. 하찮은 점수로 간신히 했어도 합격은 합격이었다. 1점 차로 떨어졌던 아쉬움의 크기 못지않게 단 2점을 더 맞아 합격한 쾌감도 짜릿했다. 필요도 없는 합격증을 구태여 출력해서 집까지 갖고 들어왔다. 아내는 왜 액자를 만들어 걸어놓지 그러냐고 했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 연이어 일어났다. 중반기, 하반기에 응시했던 자격증 시험도 모조리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적잖이 당황한 것은 아내였다. 의기양양, 기고만장한 내 꼬락서니를 보는 것도 곤욕이었다. 더 문제는 벼락치기 공부법의 우수성과 내 천재성 중 하나를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나 몰래 회사에서 공부한 거 아니야? 그녀는 쩨쩨한 한마디 문장으로 모든 가능성을 일축하며 어느 것 하나 인정하지 않았다. 아내의 판단이 맞긴 했다. 전적으로 운이 좋았다. 공부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었고 벼락치기는 위험 부담이 큰 도박과도 같았다. 내 시시한 끈기와 인내력의 밑바닥을 확인하는 시간은 자괴감에 빠지기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위태로운 줄타기를 완주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연이은 불합격은 실패를 무던하게 대할 수 있는 내성을 만들어줬다. 때로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어떤 날은 노력 대비 과분한 결과물을 거두어들였다. 고질적이고 구태의연한 삶의 방식을 교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그 시도만은, 무모하고 미련한 응시만은 계속해 나갈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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