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설거지를 귀찮은 집안일, 피하고 싶은 의무로 여긴다. 더럽고 반복되며, 눈에 띄는 성과도 없다. 그래서 가족 간에도 누구 몫인지 실랑이를 벌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단순한 행위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이제 설거지를 예찬한다. 아니, 설거지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태도, 그리고 신과의 교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오랜 세월 영어학원을 운영해 왔고, 두 자녀는 전적으로 홈스쿨링으로 길러왔다. 남자로서, 그리고 군생활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꼼꼼하진 않지만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내 일상이 되었고, 설거지는 그 중심에 있었다.
물론 시작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속에 짜증이 고이곤 했다. 아내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아이들에게 섭섭함을 품었다. 어릴 때는 돌보아야 했으니 괜찮았지만, 중·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도움을 받지 못할 때면 마음이 답답해졌다. 때로는 감정이 격해져 다투기도 했다. 그 시간들은 단지 노동의 고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수고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때 더욱 괴로웠다.
하지만 어느 날, 아주 작은 전환이 있었다.
설거지를 하던 중,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닦는 이 그릇은, 가족을 향한 나의 사랑이자 헌신의 흔적이 아닐까.”
그날 이후, 설거지는 내게 단순한 집안일이 아니게 되었다.
삶을 숙고하는 사유의 시간,
감정을 정화하는 내면의 의식,
그리고 때론 신을 향한 조용한 기도의 순간이 되었다.
거품이 사라지고 찌든 때가 벗겨질 때, 나의 피로와 짜증도 함께 씻겨 내려갔다.
손은 반복하지만, 마음은 멈추지 않았다.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그리며, 오늘의 존재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설거지는 그렇게 나를 사유의 중심으로 초대했다.
나는 인지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언제 나의 사고가 가장 선명하게 깨어나는가?
답은 명확했다. 걷기, 산책, 운전, 그리고 설거지처럼 반복적이지만 과도하지 않은 신체 활동을 할 때였다. 이때 우리는 몸은 리듬에 순응하면서도 정신은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른다.
그 조건을 완벽히 만족시키는 것이 바로 설거지였다.
그뿐인가. 설거지는 하나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무질서한 공간을 정돈하고, 흐트러진 것을 제자리에 놓으며, 혼돈에서 질서를 회복해 나가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러한 작업은 단지 외형의 정리가 아니라 내면의 심리적 안정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청소나 정리를 끝낸 후 막연한 성취감과 평화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설거지는 그 과정의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강력한 형태다.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도 설거지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가톨릭 수도사였던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고전에서 말했다.
“신과의 교제는 특별한 장소나 시간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행위 속에서도 가능하다.”
그는 수도원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기도하며 살았다.
나는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릇을 닦는 순간, 누군가를 위해 손을 움직이는 그 조용한 시간에,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헌신이라는 형태로 표현된다.
헌신은 다시 노동이라는 몸짓으로 드러난다.
결국, 설거지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 구현된 사랑의 실천이며, 신과 만나는 가장 고요한 기도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말한다.
설거지보다 더 신성한 노동이 있을까. 더 깊은 기도의 순간이 가능할까.
삶의 진실은 번쩍이는 곳에 있지 않다.
가장 번거롭고 사소한 일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그 자리에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가 드러난다.
설거지를 앞에 두고 짜증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설거지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신과 교제하는 루틴으로 삼을 수도 있다.
나는 내가 후자의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설거지를 단지 ‘해야 할 일’이 아닌, ‘내가 누구인가’를 비추는 거울이자,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철학적 실천으로 다시 바라보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설거지는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태도를 결정짓는,
가장 조용하고도 숭고한 사유의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