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과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시간을 견디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두 존재가 서로에게 스며들고, 닮아가며, 끝내는 삶의 감각과 리듬을 공유하게 되는 신비로운 과정이다. 나와 아내 역시 그러한 길을 함께 걷고 있다.
얼마 전, 아내가 별다른 이유 없이 나에게 짜증을 냈던 일이 있었다. 순간 마음이 상할 뻔했지만, 나 또한 그런 적이 있었기에 조용히 넘겼다. 몸이 피곤하거나 마음이 지친 날이면 누구나 그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다음 날, 산책 중이던 아내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당신은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야. 아니, 가끔은 나 자신처럼 느껴져. 그래서 어떤 말은 필터 없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짜증도 그냥 나오는 것 같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가볍게 넘겨줘.”
그 말은 전날의 행동에 대한 사과이자, 우리가 도달한 관계의 깊이를 은연중에 드러낸 고백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순간, 언젠가 다짐했던 오래된 약속을 떠올렸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어떤 남편이 될 것인가, 그 물음 앞에서 스스로 내렸던 결심. 그 다짐을 다시 떠올리며,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결혼이란 서로의 일상과 마음을 조금씩 나누는 일이지만, 그 나눔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닮아간다. 먹는 것도, 말투도, 사소한 습관도 비슷해진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고, 취향과 기질, 기쁨과 상처의 결을 나보다 더 정확히 꿰뚫는 존재가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얽히고설켜 점점 하나의 존재처럼 변해간다.
사람은 낯선 이에게는 예의를 갖춘다. 말에 조심을 더하고, 표정에도 거리감을 유지한다. 일종의 ‘사회적 옷’을 입고 상대를 대한다. 그건 어느 정도의 위장이고, 일정한 긴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 장막이 사라진다. 배우자는 그런 존재다.
배우자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알몸의 나'로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다. 단점도, 결점도, 치부도 모두 드러낸 채로, 수치심 없이 마주할 수 있는 사람. 나에게는 그가 바로 아내다. 서로의 나약함을 알고도 떠나지 않으며,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다시 곁에 머무는 존재.
이런 관계 속에서 때때로 나도 모르게, 무심한 말이나 행동으로 아내를 아프게 한 적도 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쉽게 상처를 주는 법이라는 걸, 살아갈수록 절절히 느낀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내 아내만은, 영원히 철이 들지 않기를...
만약 그녀가 세상의 냉혹함에 너무 일찍 익숙해지고, 내 곁에서조차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렸다면—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딸이 아빠에게 철없이 어리광을 부리듯이, 나도 그런 존재이고 싶다. 세상의 어떤 관계보다도 편안하게, 어떤 말이든 꺼낼 수 있는 사람. 마음껏 울고 웃을 수 있는 단 하나의 피난처가 되고 싶다. 그렇게라도 이 각박한 세상에서 숨통을 틔울 수 있다면, 삶은 그 자체로 버틸 가치가 생기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부족한 남편이다. 다짐은 쉽게 흐려지고, 서운함에 휘둘릴 때도 많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을 써 내려가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시 단단히 약속하고 싶다.
내 아내가 세상 앞에서 철이 들어야 할지언정, 내 앞에서는 마음껏 철없는 사람이길 바란다.
그녀에게만큼은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웃고 울 수 있는 단 하나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나 자신에게 바라는 가장 아름다운 역할이자, 결혼이 내게 남긴 가장 성숙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