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을 향한 우리의 시선 — 한국인의 기억과 성찰

별망성 공모전 응모작 2

by 신아르케

우리 민족은 고통과 이주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 과정 속에서 수많은 한국인들이 세계 여러 나라로 이주해 갔다. 미국의 코리아타운, 일본의 재일조선인 거주지, 독일의 파독 간호사와 광부 공동체 등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들은 낯선 땅에서 언어 장벽과 문화적 고립, 경제적 불안,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분투했고, 현지 사회에 점차 적응해 나갔다. 2세, 3세로 이어지면서 이들은 해당 국가의 시민으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어딘가 다르다'는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가? 이제는 이주민을 맞이하는 국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은밀한 우월감과 차별적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베트남,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기반을 지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고된 삶을 외면하거나 하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작 영어를 쓰는 백인 노동자에겐 친절하면서, 피부색과 국적이 다른 아시아계 노동자에게는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이중잣대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민족주의의 잔재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을 너무 강하게 믿어왔고, 그로 인해 타인에 대한 배제를 정당화해 왔다.

그러나 한민족은 결코 순수한 혈통이나 고립된 민족이 아니었다. 고구려는 말갈과, 백제는 왜와, 고려는 몽골과 혼혈을 거듭해 왔고, 지금도 한국인들의 유전자는 다양한 동북아시아 민족과 섞여 있다. 우리가 타민족과의 접촉을 통해 지금의 한국인이 되었음을 인정한다면, 이 땅을 찾은 새로운 이방인들을 향한 시선 역시 달라져야 한다.

1923년 일본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로 인해 6천 명 이상 학살당했던 사건은, 집단적 공포와 혐오가 어떻게 무고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이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민족이라는 개념조차 재정의되어야 한다. 생김새가 다르고, 출신국이 달라도,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한국어로 생각하고 말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새로운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흑인계 한국인 방송인 조나단이 보여주듯, '한국인다움'은 피부색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순수한 민족'의 신화를 좇아서는 안 된다. 세계는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주민을 향한 열린 마음과 제도적 포용력이 필요하다. 차별이 아닌 연대, 경계가 아닌 다리. 그것이 지금 우리가 품어야 할 한국인의 새로운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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