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을 넘어: 권력, 자유, 그리고 법의 의미

by 신아르케

나는 요즘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읽고 있다.
‘리바이어던(Leviathan)’은 본래 히브리 성경 속에 등장하는 거대한 바다 괴물의 이름이다. 압도적인 힘과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그 이미지를 홉스는 국가를 가리키는 은유로 끌어왔다. 수많은 개인이 자신의 자연권을 양도해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인공적 존재. 그것이 곧 리바이어던이며, 현대적 의미에서 말하면 주권을 위임받은 국가라는 가상의 몸체이다.

홉스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정치·윤리·법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만큼 강력한 그의 사상은 언제나 정반대에 위치한 철학적 전통의 격렬한 반발을 동반한다. 바로 자유, 비판, 도덕, 자율성을 강조하는 사상들이다.

홉스의 논리는 이렇게 흘러간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누구나 ‘자기 보존의 권리’를 갖는다. 이것을 자연권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폭력도, 거짓말도, 속임도 모두 허락된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힘과 지능, 수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차이가 압도적이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지 누구나 누구에게든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자연상태의 인간은 서로를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쉽게 공격받는다.

홉스는 이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비열하고, 난폭하며, 짧다.”
(solitary, poor, nasty, brutish, and short)

이 비참한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이성을 사용한다. 그 이성은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이끈다.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 그리고 평화를 위해 자신의 자연권 일부를 양도하겠다는 계약. 이것이 바로 사회계약이며, 그 계약의 결과로 주권자가 탄생한다. 주권자는 국민으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은 인공적 존재이며, 그 힘은 절대적이다. 그는 공동체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모든 사안을 결정할 수 있다. 심지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조차 규정할 수 있다. 전쟁을 결정하거나 실책을 저질러도, 국민은 그 결정에 복종해야 한다. 개인이 이를 거부하기 시작하는 순간, 공동체는 다시 자연상태의 지옥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홉스의 철학은 절대군주나 절대권력의 정당화를 뒷받침하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자연상태라는 모두의 불행을 피하기 위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장치로서 말이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그만큼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 윤리와 도덕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권력자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다. 그런데 홉스의 체계는 이러한 인간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한다. 절대 권력을 가진 국가가 무엇이 옳다고 말하면, 개인은 그것이 불의해 보여도 따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유주의적·공화주의적 전통은 격렬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

이 대립은 단순한 정치적 다툼이 아니다. 양 극단의 철학이 모두 논리적으로 완벽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심연의 충돌이다. 공동체의 질서와 안전을 위해 강력한 권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완결적이고, 개인의 자유와 도덕적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완결적이다. 그래서 모순이 일어난다. 이것은 마치 칸트가 말한 것처럼, 이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일 때 서로 충돌하지만 각각은 정당한 주장들, 즉 안티노미(antinomies)에 부딪히는 것과 닮아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법’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그 어떤 개인도 권력도 법보다 위에 설 수 없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하며, 모든 개인의 권리는 법에 근거해 행사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즉, 최고 권력은 국민에게 있고, 그 의지가 헌법과 법률이라는 형태로 제도화될 뿐이다.

그렇기에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법이 결정되면 국민은 그 법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며, 그 법이 잘못되면 공동체 전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은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언제나 윤리·도덕·자연법이라는 보편적 가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권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견제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법은 반드시 정의롭게 시행되어야 한다.
법이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는 순간 공동체는 서서히 자연상태를 향해 미끄러져 내린다.
불신이 자라고, 폭력이 늘고, 공동체는 균열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법개혁은 단순한 현실 정치의 이슈가 아니라, 시대의 사명이며 국가의 존망을 가르는 중대한 과제다. 대한민국의 국운은 바로 이 지점에서 결정될지 모른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이라는 거대한 상징을 통해 국가의 힘을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가 지향해야 할 리바이어던은 무력과 폭력이 아니라, 법과 정의 위에 세워진 공동체의 지혜로운 힘이어야 한다.
강력하되 폭군이 아니고, 질서를 지키되 자유를 말살하지 않으며,
주권을 행사하되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는 국가.
그것이 우리가 만들고 지켜야 할 리바이어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