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낼 자유가 있다

by 신아르케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자유가 있다.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 방식은 실로 다양하다. 어떤 이는 말투로, 어떤 이는 옷차림과 취향으로, 또 어떤 이는 지식이나 성취로 자신을 보여 준다. 중요한 것은, 그 표현 방식이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타인의 존재 방식이 내 기준과 맞지 않을 때 생긴다.
내가 옳다고 믿는 윤리적 감수성, 내가 세워 놓은 미적 기준,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행동 양식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그 사람을 평가하고 수정하려 드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태도의 뿌리에는 사실 은근한 오만이 숨어 있다. 더 나아가면, 전체주의적 사고의 씨앗이 된다.
내가 규범의 중심이라고 착각할 때, 타인은 끊임없이 ‘교정해야 할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한 사람의 말투와 행동, 취향과 선택은 그저 단순한 겉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들이 남긴 존재의 흔적이다.
그 속에는 과거의 상처가 있고, 결핍이 있고, 가정환경이 있으며, 타고난 기질과 유전적 요소가 있다. 환경이 쌓아 올린 층위까지 함께 겹친 결과물이 바로 ‘한 사람의 현재 모습’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왜 그렇게 행동하느냐고 묻는 것은, 마치 “왜 그렇게 생겼냐”고 묻는 것만큼 폭력적일 수 있다.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여러 방식으로 정의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랑이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그가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거쳐 온 수많은 내면의 여정을 헤아리며 보는 것, 그가 표현하는 방식이 내 취향과 다르더라도 그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랑의 출발점이다.

어떤 이는 고급 자동차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어떤 여성은 명품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누군가는 학력과 지식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고,
또 누군가는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를 통해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 모든 표현 방식은 우월감이나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 불안의 보상, 결핍의 흔적 등 복잡한 내면이 얽혀 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법을 어기지 않는 한, 각자가 선택한 방식으로 존재를 표현할 자유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자유로운 시민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성급히 재단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이 시대 시민의 기본 덕목이라고.

포용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눈앞의 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작은 태도에서 시작된다.
사랑 역시 멀리 있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에 이미 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 방식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배움이 쌓일 때, 비로소 성숙한 시민사회가 가능해지고,
사랑의 정신 또한 그 자리에서 조용히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