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지 않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by 신아르케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했다고 말한다. 실패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실패로부터 배웠고, 그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반복 끝에 지금의 자리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이 단순한 진술은 놀랍도록 많은 삶의 영역에서 진리에 가깝다.

이 태도는 나이나 직업을 가리지 않는다. 생산적인 삶, 성취의 경험, 그리고 행복을 향한 가장 강력한 철학이기도 하다. 내가 이 철학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참된 실존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판단을 양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기준, 사회의 기대, 익숙한 관성에 판단을 맡기는 순간 인간은 편안해질 수는 있지만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자유란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라, 사용하는 능력이다. 자유가 있어도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태도와 훈련이 없다면, 그 자유는 장식에 불과하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며 행동할 때 비로소 자유롭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우리는 생각은 많이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다. 생각 속에서 수많은 가능성을 떠올리지만, 그것은 현실이 되지 못한 채 머릿속에서만 맴돈다. 이 모습은 양자역학의 한 이미지와 닮아 있다. 전자의 위치는 관측되기 전까지 확률의 구름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관찰의 순간, 그 가능성은 하나의 위치로 결정된다. 물론 이것은 엄밀한 과학 설명이라기보다는 삶에 빌려온 비유이지만, 핵심은 분명하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에서 도전은 중요하다. 도전은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선택을 주저한다. 그 이유는 대부분 완벽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물건 하나를 고를 때조차 우리는 장단점을 비교하고, 기회비용을 따지며, 최선의 선택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동전과 같아서,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있다. 장점은 다른 맥락에서 단점이 되고, 단점은 다른 순간에 장점이 된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려 깊음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일정 시간을 넘어선 과도한 숙고는 오히려 판단을 마비시킨다. 오래 생각할수록 머리는 복잡해지고, 선택은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직관을 존중하는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직관은 무모함이 아니다. 처음 떠오른 판단을 신호로 삼되, 치명적인 위험만 점검한 뒤 실행에 옮기는 태도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뇐다.
어떤 선택을 하든 실수는 생긴다. 오류의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선택의 실패가 아니라, 선택의 자연스러운 구성 요소다. 결과가 만족스럽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 결과로부터 배우면 된다. 이것이 성장의 메커니즘이다.

또한 우리는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선택을 일상에서부터 훈련할 필요가 있다. 늘 하던 방식은 안정감을 주지만, 더 나은 경험과 성장은 대개 익숙함의 바깥에 있다. 한 번뿐인 인생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그 앞에서 가능한 경험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분명한 손해다.

물론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정과 평안을 좋아한다. 과거에 좋은 결과를 낳았던 선택을 반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심리다. 그러나 개인이든 조직이든, 이 방식은 변화 앞에서 쉽게 도태된다. 한때 잘 작동하던 전략이 변화된 환경에서도 그대로 통할 것이라 믿는 순간, 실패는 이미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사고의 유연성을 훈련해야 한다. 새로운 선택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실패의 가능성만을 이유로 새로운 시도를 배제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다시 말해, 모든 선택을 완벽함에 기초해 하려는 태도는 삶을 정지시킨다.

새로운 선택은 반드시 실수와 오류를 동반한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조건이다. 이 태도가 훈련될 때, 삶은 훨씬 더 활기차지고 에너지를 회복한다. 변화와 성장, 그리고 살아 있다는 감각이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온다.

결국 분명한 사실 하나만 남는다.
행동하지 않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선택하고, 실행하고, 배우는 과정 속에서만 비로소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