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기도문에 대한 신앙적 성찰
나는 신앙의 본질이 언제나 방식의 우열에 있지 않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방식은 사람의 내면을 빚어내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특히 기도는 그 사람의 신앙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행위이기에, 기도의 방식에는 종교 문화적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개신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천주교 신앙의 세계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인과 장모님이 가톨릭 교회 신자이기에, 나는 오랜 시간 관찰자의 위치에서 그들의 신앙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그 개인적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 성찰임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가톨릭의 기도에는 정형화된 틀이 분명히 존재한다. 신자들은 신학적으로 오랜 시간 다듬어진 기도문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간다. 한 번은 장모님께서 내 생일을 맞아 나를 축복하며 기도문을 읽어 주신 적이 있다. 그 기도는 즉흥적이지 않았지만, 가볍지도 않았다. 오히려 오랜 세월을 통과하며 정제된 언어들이 가지는 깊이와 안정감이 느껴졌다. 마치 수없이 다듬어진 돌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듯, 기도는 차분하고 질서 정연했다.
이에 비해 개신교 전통의 기도는 상대적으로 자유의 비중이 크다. 개인 기도든 공적 기도든, 그 순간 신과의 영적 교류 속에서 떠오르는 마음과 감동에 따라 기도의 내용이 형성된다. 그래서 같은 사람의 기도라도 날마다 다르고, 같은 예배의 기도도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 기도는 살아 움직이며, 변화무쌍하다.
나는 이 두 방식 가운데 어느 하나가 더 우월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인생의 모든 국면에는 언제나 장점과 단점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형식은 안정과 집중을 주지만 자칫하면 생명력을 잃을 수 있고, 자유는 생동감을 주지만 때로는 산만함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두 전통을 대립이 아닌 통합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개신교 신앙을 가진 나이지만, 가톨릭의 기도 방식에서 배운 ‘형식의 힘’을 나의 신앙 안으로 조심스럽게 끌어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나만의 인생의 기도문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다.
이 기도문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는지, 어떤 신앙의 방향을 따라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삶의 태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고백이 응축된 글이다. 나는 매일의 감정에 따라 기도를 흘려보내는 대신, 이 기도문을 조금씩 수정하고 다듬으며 나만의 신앙고백으로 만들어 간다. 그 형태는 사도신경과도 닮아 있다. 간결하지만, 방향을 잃지 않게 붙잡아 주는 문장들이다.
이렇게 완성되어 가는 기도문을 매일 마음속으로 되뇌며 기도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 무엇보다 기도에 몰입하기가 쉽다. 집중이 흐트러질 때에도,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에도, 나는 새로운 말을 억지로 짜내지 않아도 된다. 의미 없이 공중에 흩어지는 말 대신, 이미 충분히 숙성된 언어 속으로 조용히 들어가면 된다.
더 중요한 변화는 그 다음에 일어난다. 반복되는 기도문은 서서히 나의 생각을 만들고, 나의 선택을 바꾸며, 결국 나의 삶의 방향을 형성한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 삶의 모습이 내가 기도해 온 방향을 닮아 가고 있음을 목도한다. 기도는 단지 하나님께 무엇을 요청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겠는지를 스스로에게 각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점점 더 분명히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개신교 신앙을 가진 신자들 역시, 자유로운 기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동시에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갈 단단한 기도문 하나쯤은 품고 살기를. 언제든지 마음속에서 조용히 되뇌일 수 있는, 삶의 중심을 붙드는 기도문을 말이다. 형식과 자유는 서로를 억누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신앙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오늘도 나의 기도를 조금씩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