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통해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유용하게 쓰일 때 깊은 만족을 느낀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효능감’이라 부른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실제로 세상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감각. 이 감각은 인간을 살아 있게 만든다. 그래서 다소 거칠게 들릴 수 있지만, 인간은 자기 삶의 영역에서 훈련을 통해 역량을 갖춘 존재로 성장해 갈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인간을 물건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존재가 제 몫의 빛을 내기 위한 준비다.
긴 시간의 훈련과 노력이 쌓여 하나의 기술이 완성될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표현은 쉽게 무너진다. 반면, 단단히 축적된 기술 위에서의 표현은 자신감과 안정감을 동반한다. 그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효능감이며, 이는 자연스럽게 자존감과 행복으로 이어진다. 행복은 막연한 기분이 아니라, 내가 해낼 수 있다는 확신에서 자라난다.
아무런 역할도, 기여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가능성을 방치하는 삶은 존재론적으로 고단하다. 사람은 가만히 멈춰 있을 때보다, 자신의 역량이 쓰일 때 더 살아 있음을 느낀다. 예컨대 가수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이라면, 하루하루의 훈련을 통해 자신만의 음색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호흡과 발성, 리듬과 감정이 몸에 스며들어, 노래가 더 이상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 되는 순간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때 비로소 가수는 스스로도 기쁘고, 듣는 이들 또한 기쁘게 만든다.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본업으로 삼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의 어떤 질문에도 빠르고 정확하게 응답할 수 있는 실력, 넓은 배경지식과 명료한 설명력, 복잡한 내용을 간결하게 핵심으로 전달하는 기술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한다. 정확하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며 학생의 이해가 눈앞에서 열리는 순간, 나는 분명한 효능감을 느낀다. 그 감각은 나를 다시 공부하게 하고, 다시 연습하게 만든다.
이처럼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기술을 연마해 쓸모 있는 존재가 될 때, 개인의 만족은 주변으로 확장된다. 한 사람의 성실함은 가족과 조직을 살리고, 결국 사회 전체의 신뢰와 역량을 높인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정확성이다. 자신의 몫을 정확히 해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공동체는 건강해진다.
다시 정리해 보자.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아무 능력도 발휘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지속적인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인간은 존재로서 자신을 표출하고 표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충분히 훈련하고 개발하여, 마침내 기술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그 예술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자기 삶의 자리에서 최고 수준의 성실함으로 다듬어진 기술이면 충분하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손흥민을 떠올린다. 그의 플레이에는 재능만큼이나 오랜 훈련과 절제가 스며 있다. 그래서 그의 골은 단순한 득점이 아니라, 한 인간이 쌓아 올린 시간의 결정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런 장면 앞에서 자연스레 감탄한다.
기술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들을 우리는 장인이라 부른다. 기술의 종류가 무엇이든, 장인을 향해 존경과 감탄을 보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결과물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시간—노력, 인내, 성실—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그 감지는 우리 안에 경외에 가까운 숭고함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감정은 아름답고 선하다.
효능감은 인간을 단단하게 만든다. 단단해진 인간은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인간은 타인에게도 안전하다. 결국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상태다. 나는 오늘도 내 자리에서 기술을 다듬는다. 더 잘 쓰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서.